[광화문에서/고미석]자식의 길, 사람의 길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코멘트
그 많던 노인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고령화 사회라는데, 어디나 젊은 사람 천지다. 지난 일요일, 서울 청계천변을 뒤덮은 인파는 대부분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부나 연인들이다. 어르신 모시고 나들이 나온 경우는 드물다. ‘따뜻한 봄날’, 김형영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제 등에 업히여 꽃구경 가요./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어머니 좋아라고/아들 등에 업혔네./마을을 지나고/들을 지나고/산자락에 휘감겨/숲길이 짙어지자/아이구머니나/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봄구경 꽃구경 눈감아 버리더니/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봄날 꽃구경도 꽃구경 나름이구나. 어머니란 단어가 별스럽게 애틋해서인가.

‘어머니가 죽자, 사람들은 땅속에 묻어버렸다./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어머니의 몸이 가벼워 땅은 거의 눌리지도 않았다./이렇게 가벼워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베르톨트 브레히트 ‘나의 어머니’)

어머니만 그럴까.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아버지의 마음’)는 시 구절도 있다.

인간은 한때 자식이었다가 언젠가 부모가 되는 끝없는 순환의 고리에 서 있다. 그래서 부모 자식의 인연은 늘 고단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자식을 위해선 지나치게 많이 베풀면서도 더 못해 줘서 안타깝고, 부모에게 힘을 보태 줄 차례가 되면 지나치게 인색하면서도 형편상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합리화한다. 그나마 어른들이 나이든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중년 세대가 이 정도니, 자식에게 ‘아부’하는 부모 모습만 보고 자라는 다음 세대는 어떨까.

얻어맞은 아들을 위해 떨쳐 일어선 것으로 알려진 어느 아버지의 사연이 화제가 된 이유도 재벌 회장이라는 신분 때문보다는, ‘우리’ 안에 잠복한 ‘유별난 자식 사랑’의 실체가 극단으로 노출됐을 때의 모습을 들켜 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 일상에서 흔히 보지 않는가. 공공장소에서 날뛰고 소리 지르며 주변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내 새끼’ 타이른다고 어른들이 분연히 싸움에 나서는 광경을.

꿈꾸었으나 못 이룬 특권과 영화를 자식들만큼은 반드시 누리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부모 자신의 인생과 자녀들의 인생까지 망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부모로 산다는 것’에 온통 강박 들린 듯한 요즘, ‘자식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새삼 되새겨 보고 싶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 어버이날 디너쇼에 거금을 투자하거나 의례적인 외식으로 ‘반짝 효심’을 발휘하기보다 올해는 이런 전화를 드려 보는 거다.

“어머니(그리고 아버지), 발 씻어 드릴게요.”

한평생 고통의 무게를 지탱해야 했던, 나이 들어 앙상하게 일그러진 발, 눈이 침침해 삐뚤삐뚤 깎아 놓은 발톱을 보면 뭔가 마음속에 왈칵 치솟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가슴속 깊숙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고이는 무언가가 느껴질 것이다. 그래야 자식이다.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