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실제인물 이우실씨 “체포요? 사죄면 됩니다”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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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실(52·사진) 씨는 범인을 잡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 대신 진심어린 사죄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 씨는 16년 전 둘째아들 형호(당시 9세) 군을 잃었다. 유괴된 뒤 44일 만에 발견된 아들은 꽁꽁 얼어붙은 채 숨져 있었다.

7일 대전 서구 탄방동의 한 카페에서 이 씨를 만났다. 그는 2년 전 끊은 담배를 다시 물었다. 지난달 29일 형호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본 직후부터다.

범인은 이미 법적으로 자유인이다. 지난해 1월 공소시효가 끝났다. 이 씨는 “빚을 져도 대를 이어 갚아야 하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를 죽인 사람이 자유인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이 나고 이 씨는 산을 떠돌았다. 그냥 잊기 위해 오른 게 아니다. 산에 있는 묘지를 만날 때마다 기도했다. 형호를 잘 돌봐 달라고. 또 절을 찾아 형호를 위해 기도했다. 형호의 어머니도 매일 절을 찾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40년 넘게 살아온 이 씨는 7년 전 대전으로 이사했다. 경찰이 자신의 주변 인물을 샅샅이 조사하면서 더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대전으로 내려온 이 씨는 식당을 하다 2년 전 ‘형우개발’이란 건설업체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형호의 ‘형’자와 자신의 이름인 우실의 ‘우’자를 따 만들었다.

이 씨는 6일 우연히 형호의 일기장을 발견했다며 기자에게 건넸다. 1990년 9월에 쓴 일기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집에 가다가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불쌍해서 놓아주었다.’

잠자리조차 불쌍해서 놓아주는 아이를 범인은 유괴 하루 만에 죽였다. 그러고는 “형호를 살리고 싶지 않느냐”며 7000만 원을 요구하고 100여 차례에 걸쳐 협박전화를 걸었다. 이 씨는 “그놈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귓가에 울린다”며 “그놈이 현재도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이 씨는 유괴예방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형호 또래(이 씨에게 형호는 여전히 아홉 살짜리 아이다)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도 돕고 싶다고 했다.

대전=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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