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돋보기]골키퍼의 재발견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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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초반이지만 벌써부터 환희와 눈물, 감탄과 실망, 기대와 불안이 엇갈리며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있다.

개막전을 골 폭죽(코스타리카에 4-2 승)으로 장식한 개최국 독일은 팀 리더 미하엘 발라크가 휴식을 취했음에도 ‘젊은 피’ 필리프 람과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펄펄 날았다. 전차군단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비는 여전히 불안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이후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은 것으로 자부하는 잉글랜드는 시원하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첫 승(파라과이에 1-0 승)을 챙겼다. 웨인 루니가 벤치에 앉아 있는 가운데 승점 3점을 따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루니 없는 잉글랜드’와 ‘루니가 존재하는 잉글랜드’는 결코 같은 팀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확인했다.

생고무같이 통통 튀는 코트디부아르를 상대한 아르헨티나 역시 쉽지 않은 혈투 속에서 귀중한 1승(2-1 승)을 올렸다. 후안 로만 리켈메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의 노련미와 정교함이 피 말리는 ‘반집 승부’에서 웃음을 짓게 했다. 하지만 패배한 코트디부아르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월드컵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 줬다.

마르코 판바스턴 감독의 ‘젊은’ 네덜란드 역시 아리연 로번의 맹활약에 힘입어 천금 같은 1승(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1-0 승)을 챙겼다.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는 뤼트 판니스텔로이와 전반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수비진의 불안감을 안고 있는 오렌지 군단으로선 ‘죽음의 조’ 탈출을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운 셈. 반면 창조성의 상당 부분을 로번 한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보였다.

멕시코는 부친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떠받친 오스왈도 산체스 골키퍼의 정신력을 헛되게 하지 않았다(이란에 3-1 승). 리카르도 라볼페 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분데스리가 선수들을 앞세운 이란은 시종 무기력했다.

선수들의 명암도 엇갈렸다. 코스타리카의 파울로 완초페와 에콰도르의 아구스틴 델가도는 자신들이 여전히 ‘월드컵 등급’의 경기에서 통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와 잉글랜드 데이비드 베컴은 자신들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녹슬지 않은 솜씨를 과시했다.

람과 슈바인슈타이거(이상 독일), 피터 크라우치(잉글랜드), 로빈 판페르시(네덜란드), 오마르 브라보(멕시코), 디디에 조코라(코트디부아르), 넬손 발데스(파라과이) 등도 바야흐로 자신들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최고의 영웅은 단연 트리니다드토바고 수문장 샤카 히즐롭(37)일 것이다. 스타가 즐비한 스웨덴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기록해 트리니다드토바고가 본선 첫 진출 첫 경기에서 감격의 승점 1을 얻게 된 중심에는 이 노장 골키퍼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 있었다.

기대에 못 미친 선수도 있었다. 이란의 두 별 알리 다에이와 알리 카리미는 무기력한 플레이로 실망을 줬다. 파라과이의 로케 산타크루스는 불타는 출전 의욕만큼의 경기력을 실전에서 보여 주지 못했다.

멕시코의 전설적 골게터 하레드 보르게티 역시 부상으로 교체될 때까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폴란드의 마치에이 주라프스키에겐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첫 라운드였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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