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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가 가야 할 길’ 세계 석학 울리히 벡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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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가 가야 할 길’ 세계 석학 울리히 벡에게 듣는다

입력 2006-05-03 03:00수정 2009-09-30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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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는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합리적 통제와 제도들이 동원되지만 오히려 불확실성만 더욱 증대되는 것이 바로 위험사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을 위계질서나 제도에만 의존해 온 전통적 위험문화를 멈추고, 위험에 대한 개별적 판단을 효율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통해 위험사회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상진 교수

《사회학자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교수가 위르겐 하버마스 프랑크푸르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1일자 A29면)에 이어 울리히 벡(62) 뮌헨대 교수와 현지 대담을 갖고 ‘21세기 지식사회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하버마스 교수가 현재완료형의 석학이라면 벡 교수는 현재진행형인 대가다. 벡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뮌헨대 사회학연구소는 독일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10년 동안 매년 300만 유로(약 37억 원)의 지원을 받아 위험사회에 대한 대규모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뮌헨대 사회학연구소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번 대담에서 벡 교수는 자신의 ‘위험사회론’을 디딤돌로 삼아 세계화, 생명윤리, 문화충돌, 진보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독창적 견해를 거침없이 밝혔다. 한 교수는 “대담성과 순발력이 뛰어난 매우 정열적인 논객”이라고 그를 평했다. 이 자리에서 벡 교수는 2008년 4월 방한을 약속했다.》

―근대성(modernity)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설득력은 있지만 그 대안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들립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대안은 어떤 겁니까.

“나의 핵심 주장은 우리가 근대성의 과잉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성의 근본 원리가 급진화하면서 전면적인 위기가 도래합니다. 시장경제, 과학의 발전, 개인의 자율성이 현재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게 좋은 예입니다. 근대성이 성공하면서 기존의 제도가 낡은 것으로 변한 것입니다.”

―당신이 제기한 ‘세계위험사회론’이란 개념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1980년대 초에 나는 ‘개인화’의 방향으로 사회가 급변하면서 ‘계급’ 같은 기본 개념이 낡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기표(記標)를 찾았지만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위험사회라는 기표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핵심은 불확실성입니다.”

―당신은 위험의 복합성 다양성 그리고 편재성을 강조하는데, 그 위험을 관리하는 메커니즘도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후자에 대한 관심이 약해 비관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나는 비관적이기보다는 낙관적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은 기존 제도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기술 합리성, 합리적 통제의 제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생산적이고 비창조적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 많은 제도가 동원되지만, 그럴수록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합니다. 이런 경향의 급진화가 바로 위험사회입니다.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생산적입니다. 계몽적 효과를 통하여 시민사회 안에서, 또는 국제 수준에서 위험에 대응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새로운 길은 사회구조 안에서 배태해 성장할 텐데 그 행위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나는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반권력’이라는 책에서 세계화의 효과를 글로벌 권력게임으로 묘사했습니다. 지배적인 것은 세계 자본과 최소 국민국가의 연합입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연합의 특성은 세계 자본만 빼고 모든 게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맞서 시민운동, 국가 그리고 국제기구가 연합해 세계시민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에 주목합니다. 구체적 사례로 유럽연합(EU)을 들 수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는 못하지만 EU는 국가 협력체계로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지구적 위험이 현대인의 생존 조건이라면, 위험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워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위험문화(culture of risks)’가 중요합니다. 어떤 위험이 우리 앞에 있는지, 위험의 결과는 어떤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위험문화입니다. 기존의 위험문화는 위계적이며, 전문가와 국가에 의존합니다. 이런 문화가 사람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문화로 변하고 있습니다. 위험사회에 대응하는 길은 집합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의 참여적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위험문화’ 간의 충돌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5년 전만 해도 위험사회에 대해 별로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유럽문화의 히스테리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9·11테러가 터지자 갑자기 테러리즘의 눈으로 온 세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은 기후변화나 유전자조작식품 등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인의 신념 체계는 미국인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래서 양자는 충돌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란 오늘날 무엇입니까.

“코즈모폴리턴 정치를 뜻합니다. 통일성 또는 통합 대신 나는 모든 차이의 수용을 강조합니다. 각자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야 창조적이 됩니다. 이것은 현재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빈곤국에 대한 배려를 수반합니다. 요컨대, 새로운 코즈모폴리턴 정치에 의해 지구촌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특징은 진보와 보수 간의 팽팽한 균형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생각할수록 민족적 가치보다 보편적 세계 기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매우 흥미롭고 건강한 징표처럼 보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진보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위험은 오늘날 서구보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급속히 변하는 나라들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중한 경계(警戒)의 개념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더 커지고 비용도 더 많이 들어갈 겁니다.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극복할 수 있는, 더욱 효율적인 근대성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담=한상진 서울대 교수

■울리히 벡은 누구

독일 뮌헨대 사회학연구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울리히 벡 교수(오른쪽)와 한상진 서울대 교수. 사진 제공 한상진 교수

울리히 벡 교수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 씨와 함께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각광받는 사회학자다.

1944년 독일 슈톨프에서 태어나 뮌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뮌헨대 사회학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영국의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겸임 중이다. 1986년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실제로는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는다는 역설에 직면했다는 ‘위험사회론’을 펼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론은 고도의 합리주의가 인류의 생존을 갈수록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화의 결과물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초국가적 연대를 통한 민주주의의 재창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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