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0명 입양 美인디애나大 힉스 교수

  • 입력 2006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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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교수는 인디애나대 로스쿨과 국내 법과대의 교류 및 한국 증권선물거래소 강연을 위해 3일 한국에 왔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4일 인터뷰에서 “한국 아이들을 잘 키워 준 것에 대해 한국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느낀다”고 하자 그는 오히려 “내가 한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고 아이들 덕분에 우리가 정말 많은 은혜(Real benefits)를 받았지요. 새로운 세계와 문화를 알게 되었고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으니까요.” 그는 아내가 김치도 담글 줄 안다고 말했다.

힉스 교수는 1974년 처음 한국인 아이를 입양했다. 둘째 아들을 낳은 부인이 건강 때문에 아이를 더 낳을 수 없게 되자 입양을 하기로 결정한 것. 마침 사회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이웃이 한국 아이들에 관한 얘기를 해 줘 곧바로 두 살 된 아이를 입양했다. 그때부터 1985년까지 10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 6개월 된 유아에서부터 13세 청소년까지 다양했다.

새 아이를 입양하는 데 대해 다른 가족의 반대는 없었을까.

1974년 처음 입양한 큰딸의 1996년 결혼식 장면. 웨딩드레스 차람의 큰딸 부부 양쪽 옆이 힉스 교수 부부. 힉스 교수 왼쪽이 입양한 6명의 딸들이고 오른쪽에 친아들 2명과 입양한 아들 3명이 서 있다. 맨 오른쪽이 한국 로펌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토머스 힉스 변호사. 사진 제공 윌리엄 힉스 교수

“입양은 우리 가족 모두가 한 것입니다. 입양을 결정할 때 아이들 모두 의견을 말하도록 했어요. 모두 기쁜 마음으로 새 식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면서 잘 지냈지요.”

“친아들 둘을 포함해 ‘한 다스(dozen·12명)’나 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큰 아이들이 새로 온 어린아이들을 잘 돌봐 줘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들은 지금 미국 전역과 일본 홍콩 등지에 퍼져 살고 있다. 입양아 가운데 한 명인 토머스 힉스(34) 씨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인디애나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다. 2001년부터 2년간 한국의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입양아 중 한 명은 올해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한국계 하인스 워드 선수와도 절친한 사이라고 힉스 교수는 전했다.

아이들이 한국의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하진 않을까.

“몇몇 아이는 찾고 싶어 하지요. 낳아 준 부모도 소중하니까 어떻게든 찾아 보라고 격려하고 도와주려 합니다.”

힉스 교수는 증권법과 회사법 분야에서 뛰어난 법학자이기도 하다. 미시간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월가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돈보다 가르치는 일이 더 좋아’ 1968년 로스쿨 교수로 자리를 옮겨 39년째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 전문위원이기도 한 그는 특히 주식 불공정 거래에 관한 국제적 규제와 협조 문제에 정통하다. 6일 증권선물거래소에서도 이것을 주제로 강연한다.

12일 출국하는 힉스 교수는 “아내와 함께 12명의 자녀를 데리고 아름다운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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