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평화재단 토론]축구장 밖의 축구 이야기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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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뜨거운 거리 응원은 한국인의 열정과 공동체 의식이 폭발한 결과였다. 사회학자들은 한민족이 그 에너지를 승화시킬 경우 닫힌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공동 번영에 앞장설 수 있다고 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뜨거운 거리 응원은 한국인의 열정과 공동체 의식이 폭발한 결과였다. 사회학자들은 한민족이 그 에너지를 승화시킬 경우 닫힌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공동 번영에 앞장설 수 있다고 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아일보사 부설 21세기평화연구소(소장 남중구)는 2006 독일 월드컵 개막 D-100일(3월 1일)을 맞아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축구장 밖 축구 이야기’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축구장 밖의 한국축구’, ‘축구와 한국 민족주의’, ‘축구와 세계: 축구의 세계화’ 등 3개 세션으로 나눠 10명의 전문가가 주제 발표를 했다.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로서가 아니라 철학, 정치학, 산업, 리더십, 민족주의, 페미니즘, 만화, 세계화 등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주요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발제자는 이날 발표순에 따라 위부터 아래순.》

원시적 욕망 자극… 대중 휘어잡아

▽축구가 갖는 매력: 호모 스포르티부스(Homo Sportivus)에서 자본까지(송형석·계명대 체육학과 교수)

호모 스포르티부스란 ‘스포츠를 하는 인간’이란 뜻. 축구는 인간의 원시적 속성을 자극하고 원초적인 욕망을 잘 채워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하지만 바로 이 속성 때문에 축구는 대중의 감정을 순식간에 격앙시키며 때로는 정치집단과 기업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 축구는 ‘FC 코리아’로 불릴 정도로 내셔널리즘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 축구 자체를 사랑하기보다 ‘한국의 승리’에만 관심을 갖는 것. 권력, 이데올로기, 광고,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축구 본연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야 한다.

조기축구회, 지역유대감 형성 기여

▽풀뿌리 민주주의와 한국 축구(윤종빈·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 널리 보급된 조기축구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좋은 예다. 회원 간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조기축구회는 축구를 통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이렇듯 축구는 민주주의의 완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축구를 통해 미래사회의 주인공인 유소년들에게 풀뿌리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즐겁게 주민 자치에 참여하는 세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 아닌 팬을 보고 구단 운영해야

▽축구 산업의 어제와 오늘(강준호·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소장)

축구단 자체가 가치를 창조하는 하나의 브랜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브랜드 가치는 7억5000만 달러(약 7260억 원)에 이른다. 반면 국내 프로축구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팬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프로축구 시장의 공급자인 연맹, 구단, 지역자치단체의 마인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프로축구리그는 축구 비즈니스가 아니라 모기업의 광고 비즈니스만 존재할 뿐이다. 모기업 중심에서 팬 중심으로 프로축구단 운영이 바뀌어야 한다.

히딩크는 조조… 아드보카트는 손권

▽한국축구와 리더십: 거스 히딩크에서 딕 아드보카트까지의 리더십 유형 분석(김화성·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왜 실패했을까. 그들은 한국 축구 정보에 캄캄했다. 부임하기 전에 치밀한 분석과 장기 플랜이 없었다.

유능한 참모도 없이 혼자서 한국에 왔다. 선수, 한국 코치진, 협회,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코엘류는 유능한 덕장이었지만 ‘제갈공명 없는 유비’, 본프레레는 주위의 충고를 듣지 않는 원소였다. 반면 ‘심리전의 명수’ 히딩크는 조조, 아드보카트는 실용적인 손권형이다.

붉은 악마 ‘응집된 민족’ 보여준 것

▽붉은 악마, 50년 만에 되살린 민족 공동체 본능(이용수·세종대 체육학과 교수)

2002년 여름 한반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월드컵 기간 중 전 국민이 모두 붉은 악마였다. 모두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고 의류 제조업체의 빨간색 염료가 고갈되는 기현상까지 빚어졌다.

한민족이 단군 이래 이렇게 응집된 적이 있었을까. 이제 독일 월드컵이 열린다. 이번 대회는 한국에서 열리지는 않지만 4년 전과 같이 한민족이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 재현되기를 바란다.

2002 이후 축구민족주의 업그레이드

▽민족주의 이상의 한국 축구사회학(이종영·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한국 축구는 일제 강점기 이후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게 됐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은 자기 방어적이고 부정적, 소극적이었던 옛 민족주의의 굴레를 벗고 긍정적이며 세계 사회의 리더가 되는 새로운 민족주의로 전환했다.

후기 산업사회 이론에 따르면 농업과 같은 1차 산업 중심인 사회에서 스포츠는 기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제조업에서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높이기 위해 이용되며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 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스포츠도 직접적인 생산영역이 된다.

아줌마들의 응원은 여성성의 발현

▽2002년 월드컵의 6월 응원과 젠더 정치(황영주·부산외국어대 인문사회대 교수)

2002년의 열기는 ‘아줌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거리 응원단의 반 이상과 경기장의 30%가 여성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아줌마들은 모처럼 대리 자아실현과 성취욕을 맛보았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여성의 가장 큰 힘. 특히 남녀로 이분화된 사회에서 여성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젠더화’된 사회 관행의 해체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태극기가 여성들에 의해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뜻한다.

축구만화 한국은 통쾌… 日은 비장

▽만화에 나타난 한국 축구, 일본 축구(강석진·서울대 수학과 교수)

한국과 일본의 축구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한국의 축구만화 ‘슈팅’과 일본의 ‘휘슬’을 보자. 슈팅은 2002 한일 월드컵을, 휘슬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부터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다뤘다. 둘 다 최고 흥행 카드인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전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슈팅은 통쾌함, 휘슬은 비장함을 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슈팅은 무시를 당한 주인공이 언젠간 복수를 하며 한국이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 낸다. 휘슬은 일본이 세계 정상은 아직 멀었지만 도전과 희생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는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라는 걸 보여 준다.

월드컵은 정치의 연장… 세계대전

▽축구의 세계화,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이성형·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노동과 자본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며 상품을 단순화시키는 세계화의 덫에 축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남미의 예술 축구는 유럽의 과학 축구에 밀렸다. 축구는 예술에서 경영학으로 바뀌었다. 텔레비전은 축구 세계화의 주역이 됐고 천문학적 돈이 오가는 시장으로 만들었다. 남미와 유럽의 축구 역사에는 식민지와 인종주의의 역사도 함께 흐른다. 축구는 다른 방식으로 수행되는 정치의 연장이며 월드컵은 새로운 형태의 세계대전이다.

아프리카선 탈신식민주의와 결합

▽아프리카 축구와 탈신식민주의(이한규·서울시립대 연구교수)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축구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아프리카 축구의 발전에는 타고난 신체조건도 있지만 정치적 인과관계가 크다. 축구는 유럽 선교단체들에 의해 아프리카의 일반 대중에 전파됐지만 아프리카를 단합하는 탈식민지 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아프리카 축구는 유럽 리그의 주요 공급원이 돼 있는데 이는 19세기 유럽의 노예무역에서 아프리카인이 상품화된 과정을 떠오르게 한다.

정리=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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