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식서 공개된 ‘재일교포 지킴이’ 故김경득변호사 유언

  • 입력 200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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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인권변호사인 김경득 변호사의 추모회가 25일 일본 도쿄 젠덴쓰회관에서 열렸다. 지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재일교포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추도사를 낭독했다. 도쿄=연합뉴스
재일교포 인권변호사인 김경득 변호사의 추모회가 25일 일본 도쿄 젠덴쓰회관에서 열렸다. 지한파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재일교포 권익 향상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추도사를 낭독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는 것이 재일교포의 사명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최초의 일본 변호사로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헌신한 김경득(金敬得·사진) 변호사의 유언이 25일 도쿄(東京) 젠덴쓰(全電通)회관에서 열린 추모회에서 공개됐다.

A4 용지 8장 분량의 유언은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고인이 지난해 10월 병상에서 구술한 내용을 변호사사무소 직원이 받아 적은 것이다.

‘제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유언에서 김 변호사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는 식민지 지배 침략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생겨났다”며 “재일교포의 존재는 식민지 지배에 의한 것인 만큼 재일교포야말로 평화헌법의 체현자(體現者)”라고 강조했다.

또 “전후 60년간 일본에 살면서 교포 5세의 탄생을 맞은 재일 한국인은 일본과 한국, 북한 사이의 민족 대립 감정을 완화하고 서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 왔다”며 “일본 국회는 하루빨리 외국인 지방참정권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인은 유언에서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일본 사법부가 ‘외국인은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다’며 귀화를 종용했던 일 등 자신이 겪었던 차별을 회고한 뒤 일본 정계의 개헌 움직임을 비판했다.

1980년대 초 연세대 어학당에서 고인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했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은 추모사에서 고인은 신문기자가 되려 했으나 당시만 해도 아사히신문이 국적을 이유로 뽑아 주지 않았던 일화도 공개했다.

와카미야 주간은 “고인이 신문기자가 됐으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훌륭한 기자가 됐겠지만 변호사로서 큰일을 했으니 기자가 되지 않기를 잘했다”며 “고인 덕분에 이제 일본의 언론매체는 국적에 상관없이 입사 문호를 개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김경득 변호사 약력

△1949년 일본 와카야마(和歌山) 시 출생

△1972년 와세다대 법학부 졸업. 사법시험 합격 후 국적제한 철폐 운동

△1977년 일본 사법연수원 입소

△1979년 일본 제1호 외국인변호사 등록

△1981∼84년 한국 유학

△1985년 도쿄에서 우리법률사무소 개소

△1990∼2002년 니가타대, 히토쓰바시대 강사

△2005년 12월 28일 위암으로 별세(향년 5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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