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변호 피해 곳곳에… 나홀로 소송땐 어떻게…

  • 입력 200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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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수가 8000명을 넘어섰다. 변호사들은 변호사가 더 늘면 법률서비스의 질이 더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그러면 지금의 법률서비스는 만족할 만한가. 변호사 없이 혼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나홀로 소송’ 당사자들은 오히려 “가능하면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고 혼자서 소송을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법률서비스 피해사례와 평범한 가정주부의 ‘나홀로 소송기(記)’를 통해 법률서비스를 점검해 본다.》

▼변호사 8000명 시대, 의뢰인 불만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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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부동산 거래를 하다 분쟁이 생긴 이모(35) 씨는 지난해 1월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 씨는 8개월이 지나도록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없자 지난해 9월 초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사건을 검색해 봤다.

이 씨는 사흘 뒤에 선고 기일이 잡힌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1월 초 소송을 낸 뒤 8월 말 첫 변론 기일이 잡혔지만 변호사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불출석으로 상대방 주장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한 재판부는 3주 후에 선고 기일을 잡았다. 항의하는 이 씨에게 변호사사무실의 사무장은 “항소 준비하시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례2.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당구 재료상을 하고 있는 박모(58) 씨는 얼마 전 법원에서 어이없는 통지서를 한 장 받았다. 상고이유서 제출기간 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상고가 기각됐다는 통보였다.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의 불성실한 태도로 이 씨는 상고심에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했다.

사례3. 폭행사건으로 형사 고발된 하모(31) 씨는 부랴부랴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러나 피해자 측과 합의가 이뤄져 곧바로 사건이 해결됐다. 하 씨는 변호사에게 착수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변호사는 “착수금은 돌려주지 않는다”는 변호사 선임 계약서 규정을 들먹이며 하 씨에게 호통을 쳤다.

사례4. 교통사고를 당한 무속인 김모(60·여) 씨는 충분한 배상금을 받게 해 주겠다는 변호사사무실 사무장의 말을 믿고 변호사 성공보수로 배상금의 20%를 약정했다. 13개월 동안 별 소식 없던 변호사는 5000만 원에 합의하자는 보험사의 제의를 받자마자 김 씨에게 합의를 종용했고 김 씨는 재판 한번 하지 않은 변호사에게 1000만 원의 성공보수를 지급해야 했다.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의 다급한 상황을 이용해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거나 변론을 불성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법률 소비자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된 지 5년, 변호사도 8000명을 넘어섰지만 법률시장의 양적 증가에 비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법률서비스는 10∼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의 법률서비스 실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법률서비스는 법률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경제적 비용에 비해 그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보원에 지난 1년 동안 접수된 법률서비스 분야 상담 건수는 전년 대비 40% 늘어난 163건에 이르렀다. 접수된 상담 건수의 54%는 변호사 보수에 관한 것이었다. 위의 사례는 모두 지난해 소보원에 접수된 피해 사례들이다.

유형별로 보면 변호사 위임계약을 해지했는데도 착수금을 돌려주지 않은 경우가 40건, 위임사무(변호사 업무)를 불성실하게 처리한 사례가 37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변호사가 아예 소장을 내지 않아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소보원 분쟁조정2국 최성철 과장은 “법률 소비자들이 법률서비스에 대해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해 일부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과다하게 받거나 불성실하게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사전예방과 피해구제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일국제법률사무소 장덕순(張悳淳) 변호사는 “변호사 보수와 관련해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분쟁이 생길 경우 의뢰인은 다시 한번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이중삼중고를 겪어야 한다”며 “미국처럼 변호사회가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 소송비용 분쟁에 개입해 해결하는 강제 중재제도(Mandatory Fee Arbitration)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소보원은 의뢰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여러 변호사를 만나 전문성, 성실성 등을 비교해 볼 것을 조언한다. 이때 반드시 변호사와 상담을 해야 하며 사무장 등 직원과 상담을 하거나 계약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변호사와 분쟁이 발생해 합의가 안 될 경우에는 소보원 등에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50대주부 ‘나홀로 소송’ 5년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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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법은 잘 알았겠지만 제가 당한 피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제 편이 아니었고, 제가 혼자서 노력해서 겨우 법을 제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고모(51·여) 씨는 한 증권사가 방치한 무자격 주식투자 상담사 때문에 주식 투자에서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5년간 ‘나홀로 소송’을 해 온 평범한 가정주부.

고 씨는 1심 때 선임한 변호사의 무관심과 오만함에 실망한 뒤로 항소심부터 대법원, 파기환송심에 이르기까지 혼자 소송을 해 오고 있다.

▽“돈 잃고도 오히려 소송 당해 패소”=고 씨는 2000년 6월 친구에게서 H증권 A지점 부장이라는 이모 씨를 소개받았다. 고 씨는 이 씨에게 1억5000만 원가량을 맡겨 주식투자를 했다가 적잖이 손해를 보게 됐다.

고 씨는 다음 해 4월 H증권의 다른 직원과 통화하다가 이 씨가 H증권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 금융감독원에 진상을 밝혀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조사를 위해 금감원에 출석하기로 한 바로 전날 금감원으로부터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씨가 먼저 법원에 고 씨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자신이 갚아야 할 채무가 원래 없다는 소송)을 낸 것.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일 때는 금감원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서울남부지법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걸었고 소송은 하나로 합쳐져 진행됐다.

소송이 진행 중일 때 고 씨는 변호사로부터 “법적으로 (승소판결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변호사의 ‘예측’대로 그는 1심에서 패소했다.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으로 항소심 승소=이 씨는 1심 재판 때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법원에 녹취록(37쪽)을 제출했다. 이 씨가 고 씨 및 H증권의 다른 직원들과 통화한 내용이었다.

고 씨는 1심 재판이 끝날 때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녹취록 맨 앞 장에는 녹취된 사람이 다섯 명이었는데 녹취록에는 세 사람의 통화내용만 들어 있었다.

고 씨는 법원에 “이 씨가 녹취록 일부를 빠뜨렸다”며 나머지를 요청했다. 누락된 11쪽은 금융감독원 직원과 H증권 A 지점장과의 통화 내용. 이 씨가 H증권 정식 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H증권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고 씨는 항소심에서 이 녹취록 내용과 이 씨가 H증권 투자상담사 명함을 뿌리고 다닌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고 씨 혼자서 진행한 항소심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했던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2004년 2월 서울고법은 H증권과 이 씨가 함께 고 씨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H증권은 이 씨가 정식직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했다는 판단이었다.

고 씨 소송은 지난해 4월 대법원서 파기 환송돼 현재 다시 서울고법에 걸려 있다. 고 씨는 “나는 법은 몰랐지만 내가 당한 손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며 “흥분하지 않고 냉정하고 조리 있게 설명한 것이 판사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소송을 해 오는데 도움을 준 사람은 돈을 주고 선임했던 변호사가 아니었다. 돈 한 푼 주지 않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나홀로 소송 시민연대’ 사람들이 내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해 줬다”고 말했다.

이철호(49) 나홀로 소송 시민연대 대표는 고 씨에게 “판사 앞에서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흥분하고 신경질을 낼수록 불리하다는 조언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변호사를 못 믿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며 “그러나 소송에는 전문적인 법률 문제가 많기 때문에 변호사를 잘 골라서 맡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 기사의 기획 및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한상준(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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