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여행]<1>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

  • 입력 2006년 2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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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의 속도로 관통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그리고 물질의 존재 형식을 ‘확률의 패턴’으로 해체했던 양자역학.

여기에 더하여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지적 보고(寶庫)는 이 세계와 우주에 대한 관습적인 이미지를 깨부수고 그때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차원의 단절’을 이룩했다.

이즈음 서양의 지적 사유는 대립의 합일, 상반된 것들의 결합, 총체성의 신비를 지향하는 신화적 사고와 동양사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것은 영성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다음 세기(世紀)를 예비하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지적 항해의 닻을 올린 게 현대물리학이다.

과학에서도 가장 딱딱한 분야인 물리학과 종교에서 가장 부드러운 신비주의의 만남, 아니 충돌! 그 역사적인 대면은 20세기 초반 물리학자들이 하이젠베르크의 인도를 받아 ‘양자역학의 정신에 깊숙이 들어간’ 연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 초 원자와 원자 이하의 세계를 탐험하던 물리학자들은 숱한 역리에 부닥쳐야 했다. 그 딜레마는 때로는 입자(粒子)로, 때로는 파동(波動)으로 나타나는 아(亞)원자 물질의 ‘두 얼굴’과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몸과 마음처럼 한데 소용돌이쳤다. 당시 물리학자들 사이에는 “전자(電子)는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입자인데,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파동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는 밤새 격론을 벌이다 이렇게 탄식하곤 했다. “자연은 어찌도 이리 부조리하단 말인가?”

이들은 현대물리학이 고전물리학과는 달리 그 분야가 매우 한정적이며 부분적이라는 것, 그리고 과학이 궁극적인 실재를 다루는 데 더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질과학이 (플라톤의) 그림자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것은 최근의 가장 중요한 발전이다.”(아서 에딩턴)

우리가 물리학을 통해 일상적 경험, 말하자면 동굴 속의 그림자(상대적 진리)에 대해서는 상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림자를 아무리 연구하더라도 동굴 밖의 빛(절대적 진리)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니 이들 현대과학의 선구자들이 물리학의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 영적, 신비주의적 세계관에 젖어든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아초월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는 현대물리학의 거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우리 인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영원과 마주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한언)에서 그 과학자들의 면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보어, 에어빈 슈뢰딩거, 막스 플랑크, 루이 드브로이, 볼프강 파울리, 에딩턴, 제임스 진스….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분, 시간과 공간에 의해 한정된 일부분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인간 의식의 시각적인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아인슈타인)

슈뢰딩거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우리를 포함한 다른 의식 있는 존재들은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단순히 전체의 부분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전체’ 그 자체다.” 진스는 “우리는 어떤 영적인 존재의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세계 성립에 대해 통찰의 진수를 보여 주는 신비주의 전통의 핵심에 다가서 있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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