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51·중앙대 강사) 씨는 최근 중앙대 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으로 통과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서 문헌 고증과 수학적 위치 고증방법을 통해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가 중국 대륙 깊숙한 곳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논문에서 적용한 수학적 위치 고증방법은 중국 사서에 나오는 거리를 현재의 지도에 적용해 그 위치를 역추적하는 방법.
중국 한대의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의 군국지(郡國志)에는 당시 한의 수도였던 뤄양(洛陽·허난 성 서쪽의 도시) 동북쪽으로 5000리에 낙랑군이, 4000리에 현도군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한서(漢書)’의 무릉서(茂陵書)에는 장안(뤄양보다 더 서쪽에 있는 현재의 시안·西安)에서 6138리에 임둔군이, 7640리에 진번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1리는 당대(唐代) 이후 0.393km로 고정된다. 그러나 한나라 시절, 1리가 얼마인가에는 논란이 있다. 김 씨는 위나라 기록에 등장하는 뤄양 및 장안과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도시들의 거리를 비교해 한대의 1리가 현재 거리의 75% 미만일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한대의 기록과 현재 지도상의 거리 비교를 통해 한사군의 위치를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평양지역으로 추정돼 온 낙랑군의 경우 중간에 산악지대가 하나도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랴오닝 성 서부 진저우(錦州)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또 압록강 북쪽에 있었다고 알려진 현도군은 허베이 성 동쪽과 랴오닝 성 서부를, 황해도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진번군은 압록강 서북쪽을 넘어설 수 없다.
김 씨는 여기에 한대의 도로 굴곡지수를 감안할 경우 한반도에서 가장 멀었던 현도군은 현재 베이징(北京) 동북쪽 지역,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웠던 진번군은 랴오닝 성 서부 다링허(大凌河) 유역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1990년대 초반 랴오닝 성 진저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라는 직인이 찍힌 봉니(封泥·공문서 등을 봉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가 발굴된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일치한다.
이 논문은 랴오허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초기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고조선의 실재를 뒷받침할 수 없다는 ‘물증 부족’의 비판에 대한 새로운 반론이다. 또 흥륭와, 홍산, 하가점 등 랴오허강 유역의 고대 신석기·청동기 문명과 고조선의 연관관계를 뒷받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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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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