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은 ‘진통제’보다 無能과 핑계에 화났다

  • 입력 2006년 2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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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는 어제 “(지난 3년간 카드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고통스러운데 (정부가) 진통제를 주지 않아 원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경기(景氣)를 부양하는 단기 처방인 ‘진통제’ 대신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택했다는 얘기다. 인기 없는 줄 알면서도 후유증을 낳지 않을 정책을 썼다는 자화자찬이다.

그렇다면 2004년 11월에 내놓은 ‘2005년도 종합투자계획’(일명 한국판 뉴딜)은 뭐였나. 청와대와 부처, 열린우리당이 한목소리로 “민간 자본과 연기금 등의 투자 확대로 내수를 회복시켜 5% 성장을 이루고 최소 4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던 것을 국민은 기억한다. 이것 말고도 해마다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하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등 실질적인 경기부양책을 3년간 20여 건이나 냈다. 다만 치밀성도, 추진력도 부족해 대책이 흐지부지되고 실효(失效)했을 뿐이다.

그러자 ‘체질강화책을 택했다’고 둘러대는 것 아닌가. 전국의 땅값을 뛰게 한 각종 도시개발정책, 극약 처방을 되풀이해 오히려 시장의 나쁜 내성(耐性)을 키운 아파트대책 등을 보면 정부가 정책의 후유증을 정말 걱정한다고 믿을 수 없다.

국민은 경기를 과열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잠재성장률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기업가정신에 상처 입히고 기업 환경을 악화시켜 5%대의 잠재성장률을 4%대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고통을 참아 가며 저성장을 선택했다’고 하니 국민은 정부의 무능(無能)뿐 아니라 핑계에 더 화가 나는 것이다.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 우리 민간부문이 원하는 것은 ‘진통제’가 아니라 자율 확대다. 민간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보다 불(不)간섭과 무(無)규제를 바란다. 정작 국민경제의 불안 요인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다. 예컨대 복지 분야의 진통제 처방이 ‘큰 정부의 큰 실패’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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