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 입력 2006년 2월 25일 04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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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 돈과 권력뿐 아니라 건강과 수명도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위 신드롬’은 어느 사회, 어느 국가, 심지어 동물의 세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 돈과 권력뿐 아니라 건강과 수명도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위 신드롬’은 어느 사회, 어느 국가, 심지어 동물의 세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진 제공 에코리브르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마이클 마멋 지음·김보영 옮김/448쪽·1만8000원·에코리브르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식생활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우리의 건강과 수명을 좌우하는 더 큰 요인이 있다면?

화장실 세 개에 방이 다섯 개인 집에서 사는 것이, 화장실 두 개에 방이 네 개인 집에서 사는 것보다 건강에 더 좋다면?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학사학위를 받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면? 사장이 부장보다 무병장수할 가능성이 높다면?

미국 워싱턴DC 도심 동남쪽에서부터 메릴랜드 주의 몽고메리 카운티까지 지하철을 타 보자. 1.6km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년 반씩 증가한다. 워싱턴 도심 끝에 사는 부유한 백인들은 다른 쪽 끝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보다 20년을 더 산다고 한다. 몇 km의 공간 안에서 발견되는 이 극적인 대조!

1972년부터 1991년까지 20년 동안 8500명의 미국인 남녀를 평균 가구소득별로 사망위험률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최하위 소득계층인 5등급의 사망위험률은 최고 1등급에 비해 4배가 높았다.

부(富)의 추에 따라 ‘건강 스펙트럼’은 양극단을 그린다. 그래서 이런 농담이 생겼다. “가난이 당신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그런 상태로 오래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돈과 관련된 문제인가. 같은 조사에서 교육수준별로 사망위험률을 따졌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사망위험률은 솟구쳤다. 직업군에 따른 분류도 마찬가지다. 직장이 번듯할수록 사망위험률은 떨어졌다.

1976년 런던대 공중보건학 교수로 있으면서 영국 공무원들의 질병감염률이 지위의 높낮이에 따라 변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던 저자. 지난 30년간 세계 각국을 돌며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 요인을 연구해 온 그의 결론은 이렇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 돈과 권력이 불공평하게 분배될 뿐 아니라 건강과 수명 또한 그렇다. 이른바 ‘지위 신드롬(status syndrome)’이다.”

사회적 지위는 물질적 자원의 풍족함만을 뜻하진 않는다. 삶에 대해 얼마만큼 지배력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사회에 개입하고 참여할 기회를 갖고 있는지를 가늠해 준다.

인도 케랄라 주의 소득수준은 전국 평균치에 못 미친다. 그러나 가난에 가장 민감한 지표인 영아사망률은 이 나라에서 가장 낮다. 평균수명도 다른 주보다 훨씬 높다. 왜 그럴까?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당이 통치하는 케랄라에선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매우 높다.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다. 여성에게 투자하는 사회는 포용적인 사회다. 교육 혜택은 그 상징적인 지표다.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건강을 개선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은 이를 ‘지지가 이끌어 내는 효과’라고 말한다.

모든 사회에는 계급이 있고 건강의 불평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건강의 불평등은 생물학적인 속성이 아니다. 사회의 고정된 특성이 아니다. 우리가 건강과 사회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 나간다면, 그래서 사회의 모든 계층에 ‘기회의 문호’를 넓혀 나간다면 그 불평등의 간격은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승객들의 운명은 신분에 따라 갈렸다. 구명보트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3등 칸에 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에 빠져 죽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익사 위험에 노출되는 게 온당하지 않다면, 그들이 뇌중풍(뇌졸중)이나 폐암, 정신병, 자살, 폭력 등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현실 또한 온당하지 않은 것이다.”

‘지위 신드롬’은 문명사회의 오점(汚點)이다!

원제 ‘The Status Syndrome’(2004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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