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준우]수요집회 열리는 3·1절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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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島根) 현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제정한 지 1년째인 22일은 수요일이었다. 이날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수요집회로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 여섯 분이 ‘공식 사죄’ ‘전범자 처벌’ 등의 문구가 적힌 나비 모양의 색종이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소파에 앉은 할머니 사진이 붙은 피켓이 눈에 띄었다. 19일 83세를 일기로 영면한 군위안부 출신 박두리 할머니였다.

지난해에만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 17분이 숨졌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군위안부 223분 가운데 절반가량인 118분만 살아 있다. 안타깝게도 고령인 이들이 눈을 감기 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약은 없다.

이 집회는 697회째였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처음 열렸다. 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칼바람 추위와 비바람 속에서 꾸준히 집회를 이어 왔다.

할머니들이 거리에서 떨고 있을 때 역대 정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99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꺼내 읽어 봤다. 이들 기념사는 대일(對日) 정책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사의 주안점은 해마다 달랐다.

1995년 11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고 폭탄 발언을 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정작 1994년엔 “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일본과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에 집착했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주로 남북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1999년 “햇볕정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라고 했으며 2002년에는 남북 간 평화 공존과 평화교류를 역설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3년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4년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절제하라”고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를 겨냥했고, 지난해에는 “사죄와 배상이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방식”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배상 문제를 공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사를 언급한 때도 있었고 미래 지향적 관계를 강조한 시절도 있었다. 정부의 정책도 과거와 미래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 두 분 숨져 갔다.

정부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 정부는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있으며 강제동원 피해자를 보상하는 법률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나 홀로 정책’이다.

군위안부, 강제동원 노무자, 역사교과서, 신사 참배 등 한일 간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상호작용으로 풀 수밖에 없다. 또 장기적인 과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요하게 문제를 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한 뒤 그 성과를 점검하는 것은 일을 처리하는 기본이다.

3·1절을 맞아 성명서 수준이 아닌 실리적인 대일본 정책을 듣고 싶다. 이것이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는 길일 것이다. 노 대통령이 올해 기념사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궁금하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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