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런 스타일 어때?… ‘단백질 소녀’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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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소녀/왕원화 지음·신주리 옮김/348쪽·9500원·솔

《냉장고, 다리미, 세탁기.

타이베이 여자들은 가전제품 같다.

놀라 까무러칠 정도로 희고 아름답지만 감히 가까이 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차가운 여자, 열정적일 땐 와이셔츠에 구멍을 낼 정도로 뜨겁다가도 전기를 주지 않으면 한나절을 기다려도 김 안 나는 여자,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푹 절어 있는 남자를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여자.》

‘단백질 소녀’는 이렇게 당돌한 묘사로 문을 연다. 거침없는 타입 분류 뒤엔 곧바로 남자들의 ‘단 하나의 사랑’ 찾기가 시작된다. 배경은 대만이지만 주인공 ‘장바오’의 이름에 ‘철수’를 넣어도 될 정도다. 그만큼 보편적이다.

‘단백질 소녀’는 건강하고 깨끗하고 뭐든 잘 먹고 원만한, 우리 몸의 필수영양소 단백질 같은 여자다. 장바오가 화자인 ‘나’에게 소개해줬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키도 쑥쑥 크고 몸도 탄탄해질걸!”이라고 장바오가 권하자 나는 “키 크고 몸 만들려고 여자 사귀는 거 아냐”라며 툴툴거린다.

그런데 이 단백질 같은 여자가 꽤 감동적이다. 문자메시지 날리고 e메일 ‘SEND’키 누르는 세상에, 손으로 직접 쓰고 우표를 붙인 편지를 보낸다. 단백질 여자가 운명인가 싶었는데 아차, 시험에 든다. ‘신용카드 청구서가 날아오면 즉각 결제해 버리고, 퇴근해서 노래방이라도 가면 늘 같은 노래만 선곡하는’ 여자 아니냐는 제3자의 지적이 들어온 것. 이제 나는 고민이다. 단백질 여자는 지나치게 완벽한 나머지 인간미가 결여된 것은 아닐까.

요즘 세상이 하도 빨리 바뀌니까 남녀 관계도 주춤거리다간 상황 종료다. 내가 의심하면서 시간 보내는 동안 단백질 여자는 다른 남자친구가 생겨버렸다. 상심한 나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사투리 쓰는 여자’를 만났다. 약속 시간이 1분 지나자 늦는다고 전화를 해주고 영화관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주는 세심한 여자다. 마침내 최고의 사랑을 찾아낸 걸까?

책은 이렇게 나와 장바오가 만나는 여자들에 대한 현대 젊은이들의 연애와 생활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적당한 조건에 웬만큼 필이 오는 여자인지 탐색, 작업에 들어가서 데이트에 성공, 그렇지만 번번이 위기가 닥친다.

책은 두 남자 주인공의 대화로만 전개된다. 그렇지만 따옴표 속 수다만으로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발랄한 문장에서 현대 문화 아이콘이 톡톡 튀어나온다.

내가 여대생에게 장바오와의 나이 차를 극복할 수 없을 거라고 설득하는 한 대목. “걔는 말론 브랜도의 영화를 좋아해. 하지만 당신에게 말론 브랜도란 인간이 반드시 살을 빼야 하는 이유일 따름이야. 걔가 걸치고 있는 재킷은 쑹추위(宋楚瑜·대만 친민당 주석) 스타일이지만 당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네스베(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야. 걔는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을 사는데 털어 넣지만 당신은 월급 타면 헬로키티에 몽땅 쏟아 부어.”

원제 ‘蛋白質女孩’(2000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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