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영석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빙상 말아톤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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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애인 최고의 스프린터를 꿈꾸는 이영석(오른쪽)과 아들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어머니 김미리 씨. 춘천=원대연  기자
세계 장애인 최고의 스프린터를 꿈꾸는 이영석(오른쪽)과 아들이 스케이트 타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어머니 김미리 씨. 춘천=원대연 기자
“이, 태, 리, 갈, 래…. 이, 태, 리.”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었지만 이영석(18·밀알학교 고2년)은 인터뷰 내내 이 말을 되뇌었다. 어머니 김미리(44) 씨는 토리노 동계올림픽 중계를 본 뒤 하루에도 수백 번은 이런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를 꿈꾸고 있는 걸까.

22일 개막한 제3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팅에 참가한 이영석은 ‘빙상 말아톤’으로 꽤 알려진 선수다. 2002년 롯데월드배 300m 경기에서 비장애인들과 겨뤄 1위를 차지해 주위를 놀라게 했고 지난해 3월 일본 나가노 세계동계특수올림픽(정신지체장애인 대상) 777m 부문에선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동생들에게는 아무 옷이나 입혀도 영석이는 좋은 옷을 입혀요. 혹시 영석이가 실수를 하더라도 옷차림에서부터 무시당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죠.”

발달장애인은 혼자 다니기가 어렵다. 이영석도 어머니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김 씨는 “항상 위험을 안고 사는 아이”라며 자신보다 훨씬 큰 ‘아이’(176cm)의 손을 꼭 잡는다.

이영석은 4세 무렵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남들과 어울리기 힘든 아들에게 김 씨는 운동을 권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부터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겼고 이것이 계기가 돼 스피드스케이팅에 입문했다.

함께 훈련할 수 없다는 일부 비장애인 학부모들의 항의와 출발 총성이 울려도 제자리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량이 급성장한 아들이 김 씨는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운동은 자폐아인 영석이가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성인이 돼서도 빙상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아쉽네요.”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23)과 세계장애인수영대회에서 메달을 휩쓴 김진호(20)에 이어 ‘빙상 말아톤’ 이영석까지 장애를 극복하고 열린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은 다른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또 하나의 희망이다.

토리노의 메달보다 화려함은 덜하겠지만 어머니 김 씨에게 아들이 딴 메달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이영석은 24일 스피드스케이팅 333m 부문에 출전해 38초 02의 기록으로 희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춘천=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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