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저주?…오만등 제조업 투자 안해 기술종속 심각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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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일랜드에서 한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는 오만인 탈랄 알 하시미(30) 씨. 지금까지 병원비를 내 본 적이 없고 학교 등록금을 낸 적도 없다. 아일랜드 유학 경비도 정부가 책임졌다. 자원 부국(富國)의 국민으로 누리는 특권이다.

하지만 휴가차 고향인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를 찾았다가 본보 취재팀을 만난 하시미 씨는 “자원은 없지만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부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역설적으로 오만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 230만 명에 불과한 오만의 연간 석유 생산량은 2004년을 기준으로 3890만 t. 천연가스 매장량은 1조 m³나 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도 국민도 악착같이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중심가에 위치한 파이잘리야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뿐 아니라 2, 3층 의류까지 90% 이상이 외국 브랜드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사우디에서 제조업은 투자할 가치가 없는 산업으로 여겨진다.

세계 4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쿠웨이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송근호(宋根浩) 주쿠웨이트 대사는 “쿠웨이트가 내세울 만한 기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없다”고 잘라 말한 뒤 “고급 기술은 모두 외국에서 들여오고, 심지어 석유 시추 기술도 유럽이나 미국의 도움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석유는 중동 산유국(産油國)을 먹여 살리는 핵심 자원이지만 ‘그늘’도 깊다. 사우디 이란 이라크 오만 쿠웨이트 등에서 모두 비슷하다.

미국외교협회가 발행하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2004년 7·8월호는 “저개발 국가 중 34개국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풍부하게 보유한 국가”라며 “하지만 이들 국가 중 12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도 안 된다”고 분석했다. 또 34개국 중 3분의 2는 비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가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당수 중동 국가에서 풍부한 석유는 정치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왕이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을 발굴해 얻은 수입으로 군대 경찰 정보기구 등 모든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1인 독재정부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반발은 알 카에다처럼 급진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세력이 확산되는 토양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엔 코소보 행정관을 지낸 버나드 쿠시너 씨는 2003년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독재의 원인은 두 가지로, 극심한 빈곤 또는 풍부한 석유자원”이라고 지적했다. ‘석유의 축복’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때로 ‘석유의 저주’일 수도 있다.

무스카트(오만)=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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