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어, 신성일은 안보이네!… ‘신성일의 행방불명’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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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은 곧 죄’라는 교리를 강요하는 보육원 원장과 아이들의 관계를 통해 정치와 종교의 본질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신성일의 행방불명’. 사진 제공 스폰지
‘식욕은 곧 죄’라는 교리를 강요하는 보육원 원장과 아이들의 관계를 통해 정치와 종교의 본질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신성일의 행방불명’. 사진 제공 스폰지
《한 보육원. 이곳은 밥값을 아끼기 위해 ‘식욕은 곧 죄’라는 교리를 세운 원장의 1인 독재체제가 지배하는 세계다.

믿음이 깊은 소년 신성일은 금식까지 하면서 교리를 따르지만 도무지 살이 빠지지 않는 통통한 외모 때문에 아이들에게 “숨어서 먹는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나님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때론 변소에, 때론 침대 밑에 숨어 초코파이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는 아이들은 어느 날 마음껏 식사하고 있는 원장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폭동을 꾸미기 시작한다.

신성일은 끝까지 반란을 거부하며 버틴다.》

16일 개봉된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전복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독립영화다. 한국 영화아카데미를 나와 일찍이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와 같은 단편영화로 주목받아 온 신재인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에 자신의 돈을 보탠 단돈 6500만 원으로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찍었다.

정말 신 감독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는 건, 머리 쓰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그대로 가져온 뒤 이를 홀까닥 뒤집어 버리거나 아니면 무지막지하게 강화해 버린다. 이런 방식을 통해 그는 딱딱하고 진부한 주제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상품인 양 둔갑시켜 버리는 마술을 부린다.

여심을 살살 녹이는 로맨틱한 대사를 던졌던 미남 배우 ‘신성일’의 이름을 가져와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 신심(信心) 깊은 아이의 이름으로 바꿔 놓은 것이나, 새로 고아원에 들어와 뭣도 모르는 채 건방을 떨며 “타락이 뭔 줄 알아? 너랑 나랑 자면 타락이야” 하며 새침하게 한마디를 하는 핏기 없는 소녀의 이름을 ‘이영애’로 설정한 것이 그 예다. 신 감독은 집중력 있고 일관된 주제의식을 통해 이런 ‘이름 장사’가 단순 호객 행위 이상의 통찰력 있는 영화적 장치였음을 깨닫게 만든다.

하지만 원색적인 주제의식은 이 영화엔 ‘양날의 칼’ 같은 것이다. 줄거리를 미리 ‘읽는’ 데서 오는 기대감에 비하면 영화적 재미가 의외로 떨어지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쉼 없이 노골적으로 반복하는 행위가 관객에게 가져다주는 일종의 피로감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상징과 비유는 탁월하다. 말도 안 되는 교리를 강요하는 원장과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지도자와 우민(愚民)이 맺는 뒤틀린 사회계약이 풍자되어 있다. 영화는 선(善)이란 이름으로 행사되는 폭력의 기고만장함과 반란을 꿈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정치와 종교, 세뇌 혹은 집단최면, 시민불복종의 개념들을 우화적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이 영화가 상영시간 103분의 장편이라는 사실이다. 이렇듯 신선했던 아이디어들은 영화 속에서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고 살아 움직이지 못한 채, 마치 학원 강사의 요점 정리 노트처럼 일목요연하고 도식적으로 제시된다.

이는 30분이면 충분히 전달할 만한 비유와 상징의 메뉴를 길게 끌고 가는 데서 잉태되는 본질적인 문제에 속한다. 어느새 영화 스스로도 영화 속 보육원장의 패착처럼 누군가를 억지로 가르치려 드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도, 이야깃거리가 갖는 태생적인 몸집의 왜소함 탓으로 보인다.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신나게 갖고 놀았듯, 신 감독이 영화 자체를 더 신명나게 갖고 놀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주제는 겨울철 김칫독처럼 땅속 깊숙이 묻어둔 채로 말이다.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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