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지도부 위폐혐의 기소할 수도”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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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조사국(CRS)의 위조지폐 전문가인 라파엘 펄 연구원은 22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북한 위조지폐에 대해 점차 신중히 발언하는 것은 북한 지도부(North Korean leadership)를 기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펄 연구원은 이날 미 상원에서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세미나의 주제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 정부가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기소한 것을 예로 들면서 “당시 미 관리들이 언론에 입증할 수 없는 말을 했다가 법정에서 노리에가 측 변호인의 역공을 받아 미국 측 기소 내용의 신뢰성이 약화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발표 후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기소 문제는 법무부가 결정할 문제로 그쪽에 문의해야 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펄 연구원은 또 1994∼99년 북한의 위조지폐 적발 사례가 모두 13건에 이른다고 말했다.

2003년 의회청문회에서 윌리엄 파크 조사원이 ‘1993년 북한 기업인이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채 한 은행에 위조지폐 25만 달러를 입금하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고 증언한 일도 있다는 것.

이 사건은 1994년 6월 마카오 소재 북한 기업인 조광무역의 사장이 최근 ‘돈세탁 의심은행’으로 미 재무부가 지정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거액의 위조달러를 입금하다가 적발된 사례를 가리킨다. 펄 연구원은 “어떻게 북한이 제조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느냐”는 러시아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 미 정보 당국의 광범위한 북한 내부 감청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가정적인 답변”이라고 전제한 뒤 “냉전시대 미국은 구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자동차 안에서 ‘모스크바 최고 마사지클럽’을 이야기한 것까지 다 들었다”며 “북한 위조지폐 공장 노동자들이 손에 묻은 잉크를 씻으며 나눈 대화를 감청했다면 (현장에 가지 않고도)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동아시아태평양 선임보좌관은 북한 위폐 문제와 관련해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더 강하게 미국에 대북(對北) 압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며 “그럴수록 북한은 한미동맹을 더 이간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에 대북 압박을 그만두라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으며 한국 여당은 ‘1998년 이후 북한이 위폐를 유통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野 ‘위폐공장-슈퍼노트’ 추정 사진 공개▼

한나라당 의원들은 23일 국회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중국에서 입수했다는 북한산 ‘슈퍼노트’와 북한 내 위조지폐 제조 의심시설에 대한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범죄행위가 명백한 만큼 정부는 북한 감싸기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재원(金在原) 의원은 “북한이 평양시 중구역 동흥동 소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방공급소’에서 위폐를 제조하고 있다”며 관련 인공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이 위폐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광명성 무역회사’를 통해 배포된다는 것.

김 의원은 “정교한 슈퍼노트를 만들 수 있는 스위스제 ‘인타글리오 컬러8’ 인쇄기의 가격이 150억 원에 이르고 오직 국가기관에만 판매된다는 점 등을 종합할 때 김정일 정권이 위폐 제조자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문수(金文洙) 의원도 올해 초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무역상(신흥무역회사)으로 활동하는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기관원에게 70달러를 주고 입수한 것이라며 2003년형 북한산 ‘100달러짜리 위폐’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날 답변에 나선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북한 위폐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어 북에도 우려의 뜻을 전달했다”고만 말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 위폐 제조의 증거와 관련해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미국이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는지는 말하기 곤란하다”고 모호한 답변을 했다.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위폐 정보가 불확실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측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열린우리당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북한 위폐 발행시설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오든지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하나 아직까지 증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선병렬(宣炳烈) 의원은 미리 배포한 질의서에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위폐 문제 등으로 대북 강경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며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물을 다 흐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 의원은 실제 질문에서는 “미꾸라지 발언은 배포한 질문서로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北 위폐기법 美보고서’ 신동아 3월호 보도▼

북한 당국은 위폐 제조를 위한 인쇄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면서 실제 달러 지폐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밀한 위폐를 만들어 냈다는 게 신동아 3월호가 보도한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북한 위폐 보고서’의 골자다. 보고서는 미 재무부 관리들과 탈북자들의 상세한 증언을 담고 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 요약.

미국 정부의 한 분석가는 “북한이 위폐를 얼마나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없다. 제조기술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만든 정교한 100달러짜리 위폐 ‘슈퍼노트’에 ‘C-14342’란 일련번호를 붙였다. 번호는 위폐가 진짜 지폐와 구분되는 ‘약점’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붙여진다. 그러나 슈퍼노트의 약점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 재무부 산하 비밀검찰국의 한 요원은 지난해 3월 “슈퍼노트가 진짜 돈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말했다.

로버트 루버 전 조폐국장에 따르면 북한은 슈퍼노트 제작에 필요한 종이가 부족해 1달러짜리 지폐를 표백해 재인쇄하는 방식을 썼다. 북한의 전직 고위 정보 당국자인 김정민은 1996년 “1달러짜리 지폐를 다량 입수해 잉크를 지우고 표백했다. 지폐의 크기가 중요했지 종류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 강성산(姜成山) 전 정무원 총리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탈북자 강명도는 평양 ‘101호 연락소’에서 연간 800만∼1000만 달러 규모의 위조달러가 인쇄됐다고 주장한다.

한 탈북자는 위폐 제조 장소를 평안남도 평성 시내의 국립조폐소 ‘62호 인쇄공장’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사회안전부에서 일했다는 탈북자 이모 씨는 “700명의 노동자가 62호 인쇄공장에서 사회안전부의 감시를 받으며 위조달러를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미 의회조사국 라파엘 펄 연구원은 지난해 3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위폐 인쇄시설에 대해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조폐국에서 훔쳤다가 구소련에 의해 1980년대 후반 북한으로 인도된 물건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현재 가장 개연성이 높은 설명은 북한이 세계 도처에 출시돼 있는 인쇄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펄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일부 위폐에 대해 “1990년대에 북한이 유럽에서 구매한 장비로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루버 전 조폐국장은 “북한 당국은 과거 20년 동안 미국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모델의 인쇄기인 스위스제 ‘인타글리오 컬러8’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은 이 장비의 사용법을 교육받을 기술자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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