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된 사고 버리고 자기검증부터 해야 쏠림현상 극복”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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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가 23일 연세대에서 퇴임 강연을 했다. 김재명 기자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가 23일 연세대에서 퇴임 강연을 했다. 김재명 기자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쏠림 현상’이 생겼는데 이것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나 편향된 사고를 갖지 않고 자기 검증을 하면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원로 문학비평가인 유종호(柳宗鎬·71) 연세대 특임교수가 23일 퇴임 강연을 했다. 대학 강단 생활 40년을 맺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이날 오후 3시 연세대 알렌관 무악홀에서 열린 퇴임 강연장에는 김우창(金禹昌) 고려대 명예교수, 이남호(李南昊) 고려대 교수, 김미현(金美賢) 이화여대 교수 등 평론가들과 제자 등 70여 명이 모였다. 유 교수는 “정신과 육체의 변고 없이 떠나게 된 행복을 자축한다”는 말로 퇴임사를 시작했다. “나이 많은 사람이 노년의 지혜를 갖고 있다는데 이것은 노년에 의한, 노년을 위한, 노년의 이데올로기”라며 “나는 순발력과 상상력으로 충만한 젊음이 좋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그렇지만 노년의 한 가지 장점은 젊은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의 지식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를 직접 살았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 유권해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서, 강단 앞의 젊은 학생들을 향해 “우리 사회는 굉장한 발전을 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광복부터 최첨단 기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어온 노교수는 이날 젊은이들에게 “낙관적인 관점을 가져 달라”고 주문했다.

유 교수는 “한국 대학 국문과에 미국과 일본, 우크라이나, 몽골 등에서 한국 문학과 문화를 배우려는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면서 “국력이 향상됐다는 증거이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낙관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려했던 것은 ‘정답 신앙’이라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이 선다형 문제로 시험을 봐서인지 정해진 정답이 (하나)있고 나머지는 오답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널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 책이 학생들의 리포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다면서 “예술사를 역사유물론적 입장에서 기술한 이 책은 훌륭한 저서고 필독서이긴 하지만, 내용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며 많은 오류를 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그렇지만 학생들은 이 책을 유일한 정답으로 생각하고,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답이고 일탈이라고 여긴다”고 했다. 유 교수는 이런 걱정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한계를 인식하고 반대되는 태도도 생각해 보는 게 인문학도의 태도가 아닌가”라고 고언했다. 그는 “1940년대 미국 대학 사회에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지 않고는 대화에 낄 수 없었다”면서 “그렇지만 오늘날 그런 교양이 존재하는가”라고 대학생들의 교양 부족을 질타하기도 했다.

퇴임사 뒤 기념 논문집이 봉정됐다. 1957년 등단해 50년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온 유 교수의 비평의 궤적을 훑은 ‘유종호 깊이 읽기’(민음사)다. 시인 신경림(申庚林) 김광규(金光圭), 소설가 이청준(李淸俊) 이문열(李文烈), 평론가 정과리 이광호(李光鎬) 씨 등 23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논문집에는 대담과 서평, 추억담 등이 실렸다. 유 교수는 “서운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나는 정말 홀가분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유종호 교수는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7년 서울대 영문과 졸업. ‘문학예술’에 평론 ‘불모의 도식’ 발표해 등단 △1991년 서강대 영문학 박사 △1977∼96년 이화여대 교수 △1996∼2006년 2월 연세대 특임교수 △주요 저서: ‘문학과 현실’,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주요 상훈: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인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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