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대책 “땜질처방 안속아” 상승→하락→상승 악순환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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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 5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으며 이에 따라 아파트 값은 ‘상승→하락→상승’의 ‘W’형 곡선을 그렸으나 가격 안정은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말로는 일관된 부동산 정책을 편다고 하지만 과거 정부의 대증(對症)요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 앞으로도 아파트 값은 W형 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본보가 경원대 이우종(李愚鍾·도시계획학) 교수팀의 협조로 국민은행이 조사한 아파트 값의 ‘전월 대비 증감률’과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적용 시점을 분석한 결과다.》

○ 아파트 값을 쫓아다닌 부동산 정책

김대중(金大中) 정부 이후 부동산 정책은 경기가 침체하면 규제 완화로, 시장이 과열되면 규제 강화로 대응하는 전형적인 ‘냉온탕’식 행태를 보였다.

서울 아파트 값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계속 하락세를 보이며 그해 4월에는 전달보다 4.7% 떨어졌다. 그러자 정부는 같은 해 △5월 취득·등록세 한시 감면 △12월 수도권 공공택지 내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자율화 조치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러자 1999년 1월에는 아파트 값이 전달보다 3.1% 오르며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아파트 값 상승률이 0%대로 다시 떨어지자 △2000년 8월에는 비수도권 내 새 집 구입 시 양도소득세 면제(2001년 말까지 한시 적용) △2001년 5월에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지원 등을 추가로 발표했다.

잇따른 ‘당근’ 조치로 아파트 값은 2002년 1월 6.5% 오르는 등 확연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에 부동산 정책은 ‘완화’에서 ‘규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1월에는 분양권 전매에 대한 세무조사 계획에 이어 △3월 서울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 △8월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 강화 등이 나왔다. 잇따른 규제책으로 그해 말에는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서 2003년 1월에는 아파트 값이 전달보다 1.6% 떨어졌다.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파트 값

노무현 정부는 2002년 나온 규제 정책들의 ‘약발’이 떨어지자 출범 직후부터 추가로 규제책을 선보였다.

2003년 4월 아파트 값이 1.9% 오르자, 정부는 5월 투기과열지구 내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투기과열지구 내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아파트 값 상승률은 잠시 0%대에서 주춤하더니 그해 9월 다시 2.5% 올랐고, 이에 정부는 정권 출범 후 첫 부동산 종합대책인 10·29대책을 발표했다.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등을 담은 이 조치로 아파트 값은 한동안 ‘동면(冬眠)’에 들어갔다. 특히 2004년 6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서울 지역 평균 아파트 값은 매달 떨어졌다.

여기에는 2004년 4월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로 ‘노무현식 개혁 정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 확산된 점도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정부가 같은 해 11월 서울 강남 송파 성동구의 일부 동을 주택거래신고지역에서 제외하고, 2005년 1월에는 서울 광진구 등 8개 지역을 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하자 아파트 값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5년 2월부터 반등한 아파트 값은 6월에 상승률 2.2%를 보이며 완연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에 정부는 다시 규제의 고삐를 조여 4월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에 대한 직권 조사, 8월 8·31 부동산 종합대책 등을 내놓았다.

○ 8·31대책 이후에도 계속되는 W형

8·31대책으로 2005년 10월 아파트 값 상승률이 9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아파트 값은 다시 숨을 죽였다.

하지만 8·31대책의 입법 지연과 시장에서 퍼진 규제완화 기대 심리 등으로 아파트 값은 12월부터 다시 상승했다. 특히 서울 강남구는 올해 1월 2.2%의 상승률을 나타내는 등 일부 지역 아파트 값은 8·31대책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에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를 집값 인상의 진원지로 보고 3월까지 대대적인 재건축 규제책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단기적인 시장을 겨냥한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3월 재건축 대책도 부동산 시장의 내성(耐性)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봤다.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윤영식(尹榮植·부동산학) 교수는 “투기 세력은 잡아야겠지만 정부의 충격요법식 부동산 정책은 결국 정부에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원대 이 교수는 “정책의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국민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지 못하고 결국 시장의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며 “당장의 문제 해결보다는 중장기적인 예측을 통해 문제를 예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자료조사=김아연 정보검색사

▼전문가들 “이래서 문제다”▼

한국의 부동산정책이 ‘갈지(之)자’ 걸음을 계속하는 이유는 뚜렷한 목표나 장기 비전 없이 상황에 따라 대증요법을 써 온 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국대 조명래(趙明來·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전체적으로 ‘시장 개입적’이지만 지나친 통제로 이상이 발생하면 완화했다가 가격 폭등이 일어나면 다시 규제로 돌아오는 식의 행태를 되풀이해 왔다”고 비판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 재정을 꾸준히 투입해 장기적으로 주거 문제 해결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시장에 맡기는 ‘양단간’ 결정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택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품질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이 ‘양(量) 중심’의 정책을 쏟아 내면서 가격 등락폭이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건국대 조주현(曺周鉉) 부동산대학원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절대적인 주택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소비자들이 질적으로 수준 높은 주거지를 찾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신도시 개발을 통해 물량만 쏟아 내는 등 정교한 수요와 공급 분석에 기초하지 않은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현 정부 들어 시작된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등 지역균형개발사업은 표와 직결돼 있어 다음 정권도 폐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출산 추세로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전국적으로 주택이 과잉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현 정부가 한정된 지역의 주택 가격 상승에 지나치게 반응해 전체 주택시장에 충격을 주는 정책을 반복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서강대 김경환(金京煥·경제학) 교수는 “‘서울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의 아파트 가격에 집착해 정책의 목표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큰 문제”라며 “정부 주택정책의 목표는 전반적인 주거 수준의 향상, 또는 사회 약자를 위한 주거 지원 등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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