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푸, 한국진출 10년에 업계 4위…초라한 성적표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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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느냐, 떠날 것이냐. 국내 진출 10년을 맞은 한국까르푸가 기로에 서 있다. 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는 미국 월마트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공룡 유통업체. 세계 30개국에 1만2000개 점포를 운영하며 연간 727억 유로(약 84조3320억 원·2004년 기준)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성적은 신통치 않다. 작년 매출액은 2조 원으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에 이어 4위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실적 부진과 일본 까르푸 철수 등 악재가 겹치면서 다른 업체에 사업을 넘기고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인수합병(M&A)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까르푸는 올해를 ‘한국화 원년(元年)’으로 선언하면서 피인수설 소문에 정면 대응하고 나섰다.

○ 한국화 원년 선언 성공할까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1시간 거리인 경기 화성시 병점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5층 높이의 건물이 나온다.

붉은색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자줏빛 롱코트를 입은 주차 안내원들이 춤을 추듯 차량을 안내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1일 개장한 한국까르푸의 32번째 점포인 병점점이다.

병점점은 기존의 까르푸 매장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지하 1층 계산대 앞에 150여 평 규모의 화장품 매장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화려하다. 1층 매장 구석에 배치된 기존의 화장품 매장과는 크게 다르다. 고급 브랜드 의류 점포 12개를 입점시키는 등 의류 매장 비중도 높였다.

지하 1층∼지상 2층에 이르는 건물 구석구석에 300석 규모의 푸드코트와 병원, 동물병원, 약국, 미용실 등도 60여 개 배치했다. 식품매장 한쪽 구석에는 30평의 휴게실도 만들었다.

이른바 ‘한국형 할인점’으로의 대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한국까르푸는 이에 대해 “공산품을 싼값에 파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토종 할인점과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 백화점급의 서비스를 제공해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운영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선 50여 명의 임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에 이르는 외국계 임원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한국식으로 경영하겠다는 뜻이다.

필립 브로야니고 한국까르푸 대표는 “아시아 지역 까르푸 190여 곳 가운데 서울 상암동 월드컵몰점과 경기 성남시 분당 야탑점 매출이 1, 2위를 다투는 등 한국 까르푸의 선전은 돋보인다”며 “이는 한국 시장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극적인 투자의 이면은?

한국까르푸의 신규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김한진 상무는 “병점점은 앞으로 문을 열 까르푸 신규 매장이나 기존 점포를 리모델링할 때 표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까르푸 점포의 변신은 아시아 지역 다른 까르푸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개점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의 현지 까르푸 관계자 40여 명이 병점점을 찾아 벤치마킹할 정도.

주대중 한국까르푸 병점점장은 “국내 경쟁 할인점 관계자들도 직접 들러 매장운영 방식 등을 묻고 간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국까르푸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시각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비해 투자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이마트는 올해에만 15개 점포를 새로 여는 등 2009년까지 점포를 현재 79개에서 130개로 늘릴 계획이다. 홈플러스는 올해 16개 등 2010년까지 99개를, 롯데마트는 올해 12개 등 2010년까지 1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까르푸는 올해 3개, 내년에 5∼7개 추가하는 것이 고작이다.

서강대 임채운(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할인점들이 생존을 건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면서 앞으로 2, 3년 뒤에는 할인점 3강 체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소극적인 투자 이면에는 시장 철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김한진 상무는 “한국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확대와 고객 요구를 반영한 매장 운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며 철수 가능성을 일축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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