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다른 인종과 함께 살아가는 법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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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유엔입니다. 다양한 국가 출신과 인종이 모여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근처 뉴저지 주 포트리 초등학교에 딸을 전학시킨 뒤 열린 개학식에서 이 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맨해튼에 가까운 포트리는 인종 구성이 다양한 편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딸이 수학공부를 하면서 자기 반 친구들의 출신을 조사해 온 결과를 봐도 그랬다. 전체가 20명인 딸 반은 백인 3명, 흑인 3명, 한국인 5명, 일본계 2명, 중국계 2명, 인도계 2명, 아랍계 1명, 한국인과 미국인의 혼혈 2명이었다.

처음에는 교장의 말처럼 딸이 다양한 인종과 어울리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딸의 ‘친구’들은 중국계와 일본계 등 아시아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인종 친구들과 말을 하기는 하지만 학교생활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친구’는 아시아계였다.

그래서 한번은 딸에게 ‘왜 백인 등 다른 인종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 ‘스텔라 번치’(bunch·‘집단’이나 ‘떼’라는 뜻)요. 그 애들과 우리는 워낙 잘 안 놀아요. 중국과 일본 친구들이 편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은 딸이 아랍계 급우와 친하게 지내다가 친구들이 “그러면 우리 친구 하지 않는다”고 압력을 넣어서 결국 친하게 지내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마음속에도 벌써 ‘인종 경계선’이 분명히 그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같은 인종끼리 어울리는 것은 딸뿐만이 아니었다. 필자도 취재 때문에 유엔을 출입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 기자들과 만나면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쪽은 역시 일본과 중국기자였다. 유럽이나 미국 기자들과 만나면 왠지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인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어떤 사람에게 다양한 인종 사진을 연속으로 보여 줬더니 다른 인종 얼굴에 대해서는 동공이 커지는 등 경계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결국 같은 인종에게는 편안함을 느끼고 다른 인종에게는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일정 부분 본능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인종에 대한 이 같은 ‘정서’와 ‘본능’을 감안하면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인종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구나 인종갈등이 계층갈등과 연결되면 그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기 때문에 미국은 인종문제가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학 입학이나 채용에 있어서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펼치거나,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TV나 영화에서도 인종 간의 벽을 줄이도록 일부러 주인공을 다른 인종과 짝을 지어주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 민족으로 지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특별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종에 대한 편견이 더욱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혼혈인 등의 문제가 오랫동안 잠복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히 미국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로 한국계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선정되면서 혼혈 문제가 새롭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과 동남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Kosian·Korean과 Asian의 합성어)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한다.

워드 열풍으로 조성된 새로운 관심이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더 앞으로 진전시키기를 기대해 본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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