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무역협회 ‘不發쿠데타’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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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새 회장을 뽑기 위한 경선(競選)이 끝내 불발해 아쉽다. 일부 회원이 주장한 대로 경선을 했더라면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인사가 민간 협회 회장 자리에 내려앉은 데 따른 ‘낙하산’ 시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도 함께 날아갔다.

‘사상 최초로 무역 5000억 달러를 달성한 주역으로 무역 1조 달러 달성의 적임자.’ 22일 무협 회원총회에서 회장단이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새 회장에 추천하면서 내건 이유다.

그러나 수출은 기업들이 하고 있는데 무역액 5000억 달러 달성 시점에 장관을 했다고 해서 그를 ‘주역’ 운운한 것은 과공(過恭)이다. 장관이 주역이라면 당시 그쪽 공무원들에게 ‘훈장파티’라도 베풀었어야 하지 않았나. 게다가 정부가 과거처럼 무역업계를 밀어주지도 않았고 업계의 규제 해제 요구를 크게 들어준 것도 없다. 진짜 주역인 무역업계가 속으로는 냉소할 일이다.

이 전 장관은 ‘정부에 접근하기 용이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고위 공무원 경력으로 한국판 로비스트 자격증이라도 땄다는 말인가. 관리들을 많이 알고 지낸다는 것이 업계의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란 소리다. 민간이 정부에 코 꿰여 있다는 얘기다. ‘힘센’ 단체장을 통한 대(對)정부 로비로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기대감에 편승하는 것이 ‘낙하산 부대’다.

그의 능력과 관계없이 이 전 장관이 무협 회장 후보로 떠오른 것은 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나 다음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가 장관직을 떠난 것은 무협 회장을 잘 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무현 정권 차원의 인사 결과였다. 그 뒤 5·31지방선거 출마와 연결 지은 자리 배분 과정에서 그에게 주려던 자리가 없어진 모양이다. 때마침 협회장 자리가 생겼고 이 전 장관이 추대됐다. 이것이 ‘낙하산’ 시비의 저간 사정이다.

선출 과정이 법적 시비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희범 체제가 출범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업계의 불만을 듣는 일일 것이다. 마침 등장한 ‘한국무역인포럼’이 불만을 수렴하는 수고를 덜어 줄 것 같다.

중소 무역업자 20여 명으로 시작된 이 모임은 한 달 만에 회원이 300명을 넘었다. 포럼의 곽재영 회장조차 깜짝 놀랐다고 한다. “중소 회원사들의 불만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예컨대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회원사가 똑같이 연간 15만 원의 무협 회비를 내게 돼 있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 회비를 제때 못 내면 회원증을 받지 못해 영업에 지장이 생기므로 불만이 크다고 한다.

무협은 또 회원사의 기대와 달리 최첨단 무역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1조 원 이상의 자산을 쌓아 두고도 국내외 물류 지원 등 회원사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협회장 선출 과정에서 이 전 장관에 반대하는 회원사의 위임장이 포럼 측에 3000장 이상(유효표는 2617장) 몰렸다. 포럼의 팩시밀리는 약 일주일간 밤낮없이 ‘찍찌륵’ 소리를 내며 위임장을 토해 냈다. 전체 5만8000여 회원사에 비하면 적지만 협회 측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수다.

회의 절차상의 문제로 ‘경선 쿠데타’는 불발했지만 상당수 회원사가 낙하산에 대한 거부감과 협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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