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손세실리아 ‘얼음 호수’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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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 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 버린 호수를 본다

일 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봉(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시집 ‘기차를 놓치다’(애지) 중에서

입춘 지나 우수 지나, 저를 송두리째 염했던 호수가 풀리고 물결들 다시 일렁이기 시작한다.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일까? 덕분에 얼음 위에 미끄러지던 물오리들 유유히 헤엄치기 시작한다. 물고기들 다시 빠르게 움직이고, 묵은 수련잎을 밀고 새잎들 눈부시게 올라올 것이다. 저를 완벽히 봉하고 죽은 듯 살아보니, 살아서 소요고 살아서 위태로운 것임을 깨닫는다. 일 점 흔들림 없고 요지부동인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 한 계절 묵언 정진이 필요했다. 초록이 다시 시끄러워지면 호수는 다시 저를 봉해 버리리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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