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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땅서도 편치않은 ‘슬픈 단재 신채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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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땅서도 편치않은 ‘슬픈 단재 신채호 선생’

입력 2006-02-22 02:59수정 2009-09-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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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전(田) 3-5 지역에는 1평 남짓한 가묘(假墓)가 있다. 이 묘는 봉분도 자그마하고 봉분 위에 뗏장도 군데군데 파여 있다. 묘비만 없다면 무연고 묘지라고 해도 곧이들을 정도다.

21일 이 묘에 추모객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이 묘의 주인은 ‘무국적자’인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1880년 12월 8일∼1936년 2월 21일·사진) 선생이다. 단재 선생은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로서 국채보상운동을 이끌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21일은 단재 선생 서거 70주기(週忌). 선생은 중국 만주 뤼순(旅順)감옥에서 옥사한 1936년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곳에 안장됐다.

단재 선생의 유족은 2004년 묘를 이장하려 했지만 청원군청 측이 묘가 충북도 기념물(90호)이라는 이유로 제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허술한 가묘… 옛 묘 터엔 비석만
2004년 9월 22일 이장된 단재 선생의 초라한 가묘(위). 가묘에서 10여 m 떨어진 원래의 묘는 봉분이 없어져 비석만이 묏자리를 알려 주고 있다. 청원=장기우 기자

▽“묘소 훼손 참다못해 이장”=2004년 9월 22일 단재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李德南·62) 씨 등은 굴착기를 동원해 묘를 이장하려다 군청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선생의 묘는 봉분이 파헤쳐지고 유골이 보이는 등 본래 모습을 잃었고 비석도 뽑혀 나갔다. 유족과 군청 측은 10여 m 떨어진 곳에 가묘를 만들고 선생의 유골을 임시 안장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이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묘소 아래 수맥이 흘러 수차례 봉분이 무너지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묘를 인근 지역으로 이장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이 넘게 이장할 땅의 주인을 찾아다니고 청원군과 다퉈가며 (임시)이장을 했지만 군(郡)과 땅 주인 사이에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단재 선생 순국 70주년 위원회에서 성금 모금 운동을 하는 등 주변에서 도와주고 있어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묘지 조성은 난항을 겪고 있다.

청원군이 땅 소유주 측과 협상하고 있지만 토지 보상가에 대한 견해차가 크기 때문이다. 청원군청 한권동 문화공보과장은 “24일 땅 소유주와 군유림 교환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며 “선생의 묘소가 빨리 조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적 회복 법안 발의 6개월째 낮잠=단재 선생의 국적 회복 문제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단재 선생은 1912년 일제가 조선 통치를 위해 새 민법인 ‘조선민사령’을 공포하자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했다.

당시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이 호적 신고를 거부해 무국적 무호적 독립운동가는 200∼300명 선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광복 후 일제가 만든 호적부를 기준으로 국적을 부여해 선생은 국적을 얻지 못했다.

이 같은 내용이 본보 보도(2005년 8월 13일자 A1면)를 통해 알려지자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 등 22명이 ‘국적법 일부 개정 법률안’(2005년 8월 19일)을, 열린우리당 김원웅(金元雄) 의원 등 36명이 ‘국적법 개정안’(2005년 8월 24일)을 발의했지만 이들 법안은 아직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이장희(李長熙) 교수는 “단재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에게 국적을 주는 것은 명예 회복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정부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통과되길 기다리지 말고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원=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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