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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원조 혼혈스타 김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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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원조 혼혈스타 김동광

입력 2006-02-22 02:59수정 2009-10-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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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머리에 곱슬머리 아이는 소문난 주먹대장이었다. 누구라도 자신을 혼혈이라고 손가락질하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싸움이라도 해야 화가 풀렸다.

홀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맞고 들어오면 혼을 냈다. 반대로 때렸을 때는 용돈을 줬다. 아들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싶어서였다.

KT&G 김동광 감독.

그는 1951년 부산에서 미국인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1996년 작고)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 공군 정보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일본으로 전출을 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광(東光)이란 이름은 한 세무서 직원이 당시 부산에 흔했던 상호를 따 지어줬고 호적 신고도 실제보다 2년 늦었다.

김 감독은 6세 때 어머니와 인천으로 올라와 단칸방에 살며 힘겨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미군 부대에서 청소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했고 미제 물건을 팔면서 겨우 생계를 이었다.

송도중에 입학한 그는 혼혈이라 운동을 잘할 것 같다는 이유로 농구와 인연을 맺고 송도고, 고려대를 거치며 스타로 떠올랐다. 대학 졸업 후 산업은행 농구팀에 입단하려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뒤 어렵게 기업은행에 들어갔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명성을 이었다.

믿을 건 오직 실력밖에 없다는 생각에 독하게 훈련했다. 밤에도 깜깜한 흙바닥에서 먼지를 마셔 가며 공을 튀겼고 숙소에서 체육관까지 10km 가까운 거리를 늘 뛰어다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주위의 도움이 컸다는 것. 중학교부터 실업팀까지 늘 함께 운동한 백인 혼혈인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중고 시절에는 친아버지처럼 자상했던 전규삼 (2003년 작고) 씨의 지도를 받았다.

김 감독은 최근 ‘하인스 워드 신드롬’을 보며 마음 한편이 무겁다. 소외받는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자칫 반짝했다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것. 차별을 받는 혼혈인도 그저 혼자 열심히 하면 잘될 수 있다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제2, 제3의 김동광’이 쏟아지는 사회는 그만이 바라는 희망은 아닐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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