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고정일]한국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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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만 번쯤 읽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백 아름 되는 나무를 베려 할 땐 큰 도끼로 찍어야만 벨 수 있는 것이다. 심오한 글의 뜻을 어찌 나무에다 비하겠는가. 반드시 많이 읽은 다음이라야 대강이나마 그 뜻을 알 수 있을진대, 요즘은 글 읽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건성 훑어보곤 스스로 안다고 자부하니, 뜻을 터득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이는 작은 낫으로 큰 나무를 베려다 겨우 껍질이나 벗기는 데 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18세기의 실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순암 안정복(順菴 安鼎福)이 쓴 독서삼매론의 한 대목이다.

윤결은 ‘맹자’를 1000번, 노수신은 ‘논어’를 2000번, 정두경은 ‘사기’를 3000번 읽었다 한다. 이덕무는 추운 겨울 초가 단칸방에서 ‘논어’를 병풍처럼 늘어세워 외풍을 막았고, ‘한서’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이불 삼아 덮고서야 얼어 죽기를 면했다. 그가 21세 때였다. 사람들이 이들을 가리켜 ‘책 읽기에 미친 바보(간서치·看書痴)’라 했다. 참으로 대단한 독서 강국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이었다.

빌 게이츠는 바쁜 일과에도 매일 한 시간씩, 주말은 두세 시간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1997년 게이츠도서관 설립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컴퓨터가 책을 대체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텔레비전보다 책을 읽어라. 독서는 꿈을 심어 준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펼쳐 주는 것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책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고향 텍사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한 말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열흘간 휴가를 간다면 여행가방에 책 12권 정도는 꼭 챙겨 넣는다고 한다.

뉴스위크 최근 특집 ‘지식혁명, 왜 가장 현명한 국가와 기업이 승리하는가’에서 토니 블레어, 존 로즈, 토머스 프리드먼 등 세계 지성인들이 2006년 화두를 ‘지식’으로 전망했다고 소개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한 ‘21세기 지식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 지식사회를 내다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부존자원 없는 후진국엔 지식이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라며 자신의 주장을 가장 극명하게 증명해 준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프리드먼은 “원시인 남녀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이래 인간은 자기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었고, 그 아이디어의 힘이 군대와 같은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화시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이들마다 왜 독서를 강조할까. 이븐 알 아라비가 “우주는 한 권의 거대한 책”이라고 말했듯이 책은 인간에게 생각하고 분석하고 창조하는 힘을 키워 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책 읽는 사람들이 움직여 왔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중고교에서는 ‘독서 특별관리 선생(Reading Specialist)’들이 읽기 쓰기 능력 키우기 학습에 진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뉴스위크는 글로벌 리더 100명의 응답에서 가장 위협적인 아시아 지식경제국가로 인도 1위, 중국 2위로 꼽았다. 거명된 주요 5개국 중 한국은 꼴찌였다. 토플러 또한 “한국의 산업은 제3의 물결인 정보화시대에 있는데, 교육은 산업화시대에 머물러 있다”며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분야는 교육이라고 충고했다.

교육의 기본은 바로 독서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은 웬만한 수준의 인문교양서 한 권 읽어 내기 힘든 문화맹, 책맹, 준문맹자가 되어 가고 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강국이라는 한국. 지금 우리에게는 지식 국력의 위기에서 벗어날 대책이 절실하다.

고정일 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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