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석연]비겁한 保守로는 나라 못 지킨다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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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절친한 사업가는 “내가 후원한 것을 비밀로 해 주게”라고 말했다. 어느 중견기업 회장은 며칠 전 “변호사님 하시는 활동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만 회사 차원에서 후원하기는 좀…”이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가 이끄는 단체에 지원하는 것은 후환이 두렵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요청한 것은 모두 합법적 절차에 따른 소액 후원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시절 후원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고 그 사실을 활용(?)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수년 전부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 질서의 강화가 국민의 구체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신념 아래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뉴 라이트 내지 선진화운동을 포괄하는 시민운동이다. 인류 보편 이념인 헌법의 가치를 침해하려는 권력 및 세력에 맞서 나름대로 소신의 일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어찌하여 헌법정신을 구현하려는 이런 활동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하듯 숨어서 하는 반체제운동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는가. 서글픈 현실을 개탄하기에 앞서 우리 삶의 터전인 공동체 연대(連帶)가 급속히 허물어진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온다. 오늘의 번영을 이뤄 낸 공동체 가치가 진보를 가장(假裝)한 좌파, 정치적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폐쇄적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저잣거리에서 몰매를 맞고 있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공격은 이미 치밀한 조직과 자금을 확보하고 공공재(公共財)인 방송매체를 독점한 진영이 광범위한 기반 위에서 다양한 계층의 국민에게서 강력한 추동력을 얻으며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보수, 우파 및 자유주의 진영의 대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체제의 수혜자인 기득 보수층과 기업들이 체제 유지 비용을 부담하기는커녕 체제의 허점을 이용해 명리(名利)를 취함으로써 체제 공격의 빌미를 주기까지 한다. 이른바 진보, 좌파 성향의 인사가 주도하는 시민단체나 조직에는 많은 기업의 보험용 기부가 문전성시라고 한다. 하기야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 권력과 시민사회에 굴복해 시장경제의 본질 침해 여부가 쟁점이 된 헌법소원을 취하하고 8000억 원을 헌납하며 잘 봐 달라고 하는 마당에 다른 기업들의 권력 눈치 보기를 탓할 수만은 없다. 대기업 총수들이 단체로 청와대로 불려가 대통령 말씀을 들어야 하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밖에 없다. 경제의 정치 종속성을 나타내는 후진적 자화상이다.

자신의 보수적 세계관을 감추고 정권, 그리고 그와 코드가 같은 시민단체의 정책과 주장에 박수를 치고 기부를 하는 지식인과 기업들은 더는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실패로 끝날 날이 머지않은 이념과 권력에 뒤늦게 끌려가는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경영과 처신으로 체제 도전 세력에 당당하게 대응하라. 한국 보수층의 뿌리는 개화(開化)사상, 실학(實學)사상에까지 닿아 있다(남시욱, 한국보수세력 연구). 오늘의 산업화를 이뤄 내고도 부패와 무책임의 상징이 된 한국 보수가 다시 한번 역사적 소임을 다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형태의 체제 유지 비용 부담으로 전도(顚倒)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

부자의 희생 위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좌파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허구라는 게 입증됐다. 현 정권 3년 동안 기업가와 기득권층을 숱하게 공격하고 고통을 강요해 왔으나 결과는 양극화 현상의 심화였다. ‘나는 혁명 이전에는 내가 노예생활을 한 것 같은데 혁명이 일어나고 곧장 노예의 속임수에 걸려들어 그들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루쉰)

최근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뉴 라이트 내지 선진화운동은 좌우, 보혁(保革)의 이념 대결이 아닌 제대로 된 역사의 길을 밟아 가는 과정이며 이미 새로운 새벽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침묵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중도, 보수 진영에 호소한다. 좌파의 위선과 실패를 검증하면서 자유민주 기본질서에 입각한 선진 국가 시스템을 갖추는 일에 떳떳하게 함께하기를.

이석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헌법포럼 상임대표 stonepo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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