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공감]‘왕의 남자’ 자막 상영회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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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1시 45분, 영화 ‘왕의 남자’를 상영하는 서울 용산 CGV 2관에서는 특별한 모습들이 포착됐다. 영화 시작 전, 객석에 자리한 관람객들의 바쁜 손짓들이 조명을 받아 군데군데서 반짝였다. 이날 영화를 보러 온 청각장애인들이 나누는 설렘의 몸짓 언어, 수화였다.

한국농아인협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상영회’. 극장에 들어서 청각장애인들과 일반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영화관 안에는 여느 때와 달리 ‘조용한 흥분’이 가득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됐다. 한국 영화지만 스크린 오른쪽 귀퉁이에 세로 자막이 떴다. 비장애인 관객들도, 청각장애인 관객들도 감동적인 장면에서 간간이 눈물을 흘렸다. 간혹 영화를 보며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끼리 나누는 언어의 형태만이 달랐다. 손으로 하는 잡담과 입으로 하는 잡담이 섞이면서 한층 들뜬 분위기였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외화는 접하기에 어려움이 없지만 한국 영화는 오히려 보기 힘들다. 1999년 ‘쉬리’가 처음 자막을 시도한 영화였다. 상영회가 끝난 후 장애인들은 조심스럽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동준(26) 씨는 “청각장애인들이 한국 영화 히트작 한 편을 보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농아인협회 서현정 대리는 “외국에서는 청각장애인 전용 영화상영관이 따로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렇지만 청각장애인들의 수요에 비해 상영 횟수와 상영 영화의 종류가 부족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인턴기자 구민정(서울대 국문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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