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밀어내기 판매부터 밀어내라”

  • 입력 2006년 2월 2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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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 고양시의 한 주차장에 번호판이 없는 이른바 ‘밀어내기’ 차량 650여 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고양=주성원  기자
최근 경기 고양시의 한 주차장에 번호판이 없는 이른바 ‘밀어내기’ 차량 650여 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고양=주성원 기자
《자동차 내수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자동차회사들이 판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선(先)출고’하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자동차회사의 판매사원들은 회사의 ‘밀어내기 판매’ 지침에 반발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업계는 각 지점과 대리점이 실제로 판 자동차의 10∼30%가 선출고 차량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출고란 자동차회사가 판매점에 차를 미리 배정해 떠넘기는 방식으로 ‘밀어내기’ 판매라고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자동차회사가 ‘밀어내기’를 금지하고 있지만 판매 목표를 맞추지 못한 지점과 대리점은 이후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직원이나 지점 공동명의로 차를 판 것처럼 꾸며 가져온다.》

○ ‘밀어내기 차’ 주차장서 낮잠

최근 본보 취재팀이 찾아간 경기 고양시의 한 야외 주차장에는 번호판이 없는 각 회사 차량 650여 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임시번호판 유효기간(출고 후 10일)이 이미 지난 차들이었다.

선출고 차량만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이 주차장은 인근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서까지 이용하는 곳. 주차료는 1대에 하루 1000원이지만 4월부터 1500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그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뜻.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런 주차장이 수도권에 여럿 있다”고 귀띔했다.

기아자동차의 한 판매사원은 “지난달 40여 대의 차량이 지점에 ‘할당’돼 15대를 밀어내기로 출고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일부 판매사원이 회사의 암묵적인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차비 등 부담에 헐값 판매도

밀어내기 차량을 가져온 판매대리점은 주차비, 관리비 부담은 물론 손해를 보며 헐값에 차를 팔기도 한다.

기아차 판매노조(노동조합 판매지부)는 16일 대의원 대회 안건으로 선출고 금지를 상정하고 ‘선출고 차량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밀어내기 판매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판매사원들이 밀어내기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기아차 노조는 “노사 합의로 금지된 밀어내기 사례를 적발하면 관계자 징계를 요구하는 등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자동차 판매대리점 협의회도 지난달 ‘밀어내기 판매 근절’을 자체 결의하고 ‘제대로 ’팔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기아차 관계자는 “회사에서 판매를 독려할 뿐 강제로 밀어내기를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내수 부진으로 판매대리점과 회사가 애쓰다 보니 일부에서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래된 새차’ 구입 소비자도 손해

판매 현장의 반발이 심해지는 것은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동차업체 판매사원은 “판매촉진비 대부분이 밀어내기 차량 주차비와 관리비로 나가고 있다”며 “점장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주차비에 쏟아 붓거나 직원들과 주차비를 절반씩 부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내기 차량을 끌어온 대리점이 2억8000만 원의 빚을 지고 결국 문을 닫기도 했다.

‘밀어내기’의 피해는 소비자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를 야외에 장기간 방치하면 부품에 녹이 슬고 광택이 죽는다”면서 “엔진 일련번호 등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으면 출고된 지 오래된 차를 속아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고양=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공정위, 車 부품업체 납품단가 부당인하 조사▼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회사들이 부품업체의 납품 단가를 부당하게 낮췄는지를 조사한다.

허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21일 “완성차 회사들이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줄이기 위해 부품회사의 납품 가격을 부당하게 깎았는지를 이달 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허 처장은 “작년 12월 5개 완성차회사의 불법 하도급을 조사했지만 조사 결과가 미진하고 환율 하락에 따른 납품 가격 인하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부품회사의 납품 단가를 평균 10% 내리는 것을 추진하자 납품업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데서 시작됐다.

납품회사들은 “완성차 회사들이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부품가격을 지나치게 많이 깎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두영 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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