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월세 중개료 인상 ‘쉬쉬’하더니만…

  • 입력 2006년 2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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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사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다고 부담을 더 지우나요. 빈부 격차를 줄이겠다더니 빈부격차 늘리는 정책을 또 하나 내놓았군요.”(ID 이재혁)

건설교통부가 월세 중개수수료 환산 방식을 슬그머니 바꿔 지난달 31일부터 수수료가 2, 3배로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건교부 홈페이지에는 항의의 글이 쇄도했다.

여론이 워낙 나빠지자 건교부는 19일 “조속한 시일 안에 실태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수료 조정을 다시 검토하겠다”며 꼬리를 내렸다.

시행 20일 만에 다시 손보겠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잘못된 정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건교부는 지난해 9월 ‘공인중개사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부동산중개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별도의 자료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이 개정안에 월세 중개수수료 인상 방안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그야말로 ‘은근슬쩍, 몰래’ 올린 것이다.

그러나 1월 31일 시행에 들어가자마자 영세민들의 입에선 바로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월세 사는 사람들은 단돈 몇 만원에도 비명이 나오게 돼 있다.

문제가 터지자 건교부는 “관행적으로 받던 수수료를 현실화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월세 중개수수료가 지나치게 적다는 부동산중개업자들의 항의에도 일리가 있다. 법대로 하면 돈이 안 돼 아예 월세 중개를 안 한다는 중개업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중개업자는 아니다. 엄연히 법정요금으로 월세를 중개하는 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월세 시장이 존재해 온 것이다.

건교부의 구차한 사후 변명을 이해해 주려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서민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법령을 바꾸면서 보도자료나 공청회 한번 없이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던 행태이다.

혹시 돈 없는 영세민은 정부가 ‘쉬쉬’ 하며 일을 처리하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깔보는 심리가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렇게 무신경한 행정으로 어떻게 서민 주거 안정을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한심하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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