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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삶/손선향]제주 식당 아주머니의 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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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삶/손선향]제주 식당 아주머니의 뚝배기

입력 2006-02-21 03:09수정 2009-09-3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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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찾은 귀빈(VIP)들을 도와주는 일은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조차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 음악가, 운동선수, 영화배우 그리고 유명 기업인들을 맞아 영접하고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그들이 필요로 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비서처럼 수행하는 게 나의 주요 업무다. 업무를 수행하며 가끔 접하게 되는 그분들의 인품과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이런 직업을 갖지 않았으면 평생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분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특혜가 분명하다.

얼마 전에 투숙했던 미국 존스홉킨스대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의사였던 이승복 박사도 참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사지 마비의 장애를 극복하고 그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의 재활을 돕는 유명 의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의 언행 속에 녹아 있던 조국에 대한 사랑은 그분을 돌보던 호텔 직원들에게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했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을 발표하던 날, 난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몰랐을 게 뻔했던 그때 외국, 영어, 공무원 정도로 함축해 생각하며 다른 친구들이 얘기하지 못한 걸 말한 것에만 내심 뿌듯해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호텔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찌 보면 민간외교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접하게 돼 이제는 운명이 된 내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아직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이 일로 내 인생의 3분의 1을 보냈으니 이제는 내 삶과 ‘화학적인 결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주도 토속 음식점의 한 아주머니다. 미국의 한 기업인 노부부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후 그곳에서 먹은 해물뚝배기 이야기를 하며 “사실은 그 뚝배기가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번 알아보겠다고 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 식당을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식당은 제주도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우체국도 없는 곳이라서 주인이 우편으로 보내 주고 싶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하며 아주머니와 나는 마음이 통한 친구처럼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며칠 후 아주머니는 서울에 올 일을 만들어 그 뚝배기를 들고 직접 우리 호텔로 찾아왔다.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뚝배기를 전해 주며 “아가씨 땜에 온 거야”라는 말에 난 그만 울고 말았다. 그분들은 외국인 노부부가 자신들의 음식과 그릇에 애착을 보인 게 고맙다며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일부러 새 뚝배기를 사서 함께 가져오는 성의까지 보여 주었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인간은 하나이고 그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 어린 마음이란 것을 이 직업을 통해 몸소 체험하며 살아간다. 식당 아주머니의 뚝배기 같은 따뜻한 마음을 외국인 노부부에게 전한 것은 내게도 큰 보람이었다.

진정한 서비스란 결국 이런 인간관계의 미학을 제대로 재해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오늘도 발길을 내딛는다.

손선향 롯데호텔 VIP 전담 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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