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상대 손배소송 활기띨듯

  • 입력 2006년 2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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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가와시 미쓰이 탄광에서 근무하다 숨진 이봉옥 씨의 유족이 보관하고 있다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 전달한 조선총독부 명의의 편지. 이 편지는 대대적인 강제징집 이전에도 일본 정부가 한국인 노무자 관리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스나가와시 미쓰이 탄광에서 근무하다 숨진 이봉옥 씨의 유족이 보관하고 있다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 전달한 조선총독부 명의의 편지. 이 편지는 대대적인 강제징집 이전에도 일본 정부가 한국인 노무자 관리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선총독부 명의의 편지를 입수함으로써 1944년 일제의 대대적인 강제징용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노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노동력을 착취했을 가능성이 이 편지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압적인 편지=홋카이도(北海道) 지역 노무자들에게 발송된 것으로 보이는 이 편지의 1차 목적은 ‘계약기간 연장’으로 추정된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 노무자들과 일본 기업의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이 편지는 “전쟁이 계속되는 한 석탄과 광석이 많이 필요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계약을 하고 일할 결심을 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재계약은 3년이나 5년 또는 길수록 좋다”고 명시했다.

이 편지는 또 노무자의 도주나 쟁의를 막으려는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여러분은 지원병과 다름없이 조선에서 선발된 산업전사”라며 “무단으로 이직하는 사람이 있고 또는 쟁의를 일으킨다는 것을 통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이어 “여러분의 가족과 함께 대단히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한국인 노무자의 행위와 그 가족관계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같은 내용은 이들에게 일본에서 달아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안전한 곳은 없다는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는 1941년 일본 내무성 경보국(警保局·경찰청에 해당함)이 일본 기업에 지시한 한국 노무자 가족의 일본 이주도 권유하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이 편지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 일본 기업이 밀접하게 협의해 노무자를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상규명위 정혜경(鄭惠璥) 조사관은 “홋카이도 지역은 1940년대 초 ‘계약기간 단축’과 ‘임금개선’ 등을 요구하는 파업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라며 “노무자에 대한 재계약 권유가 강제성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가능할까=지금까지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강제 노역이 있었다 해도 한국인 노무자와 일본 기업 간의 계약이 자발적이었을 경우 국가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1943년 일본으로 건너간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자 10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일본 야마구치(山口)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下關) 지부는 “사실과 다른 권유가 있었지만 스스로 지원한 만큼 일본 정부와 법적 관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이 편지가 발견됨으로써 상황은 다소 달라질 수도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어과 김문길(金文吉) 교수는 “이 편지로 한국인 노무자의 보상 문제를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이 편지가 법적인 증거 서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사법부는 △현 회사는 예전 회사와 다르며 △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고 △전쟁 피해를 국가가 배상할 수 없으며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배상을 거부해 와 일본 정부의 개입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손해배상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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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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