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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6년 동남아조약기구 마지막 군사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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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76년 동남아조약기구 마지막 군사훈련

입력 2006-02-20 03:02수정 2009-10-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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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중앙조약기구(CENTO)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 미국-호주-뉴질랜드 방위조약(ANZUS) 등 집단동맹을 잇달아 결성했다.

유럽-중동-동남아-태평양을 잇는 반공(反共) 군사블록으로 소련 공산주의 세력 팽창을 차단하겠다는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현재 남은 지역안보동맹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간의 NATO뿐이다.

SEATO는 1977년, CENTO는 1979년 각각 공식 해체됐다. 두 기구는 딘 애치슨 국무장관과 함께 미국 냉전정책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의 작품이었다.

SEATO는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났다. 회원국은 미국 프랑스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파키스탄 등 8개국. 본부는 태국 방콕에 뒀다. SEATO의 목표는 베트남의 호찌민 혁명을 차단하는 것. 미국은 호찌민을 소련 공산당의 앞잡이로 여겼고 독립국도 아니었던 남베트남을 SEATO의 보호구역 아래 뒀다.

이후 22년 동안 SEATO는 매년 합동군사훈련을 하며 동맹기구 흉내는 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미국은 1965년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SEATO 회원국들에 동참을 요구했지만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4개국만이 병력을 파견했다.

프랑스는 SEATO와의 군사협력을 거부했고 영국도 베트남전쟁 개입을 꺼렸다. 더욱이 1960년대 격화된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국이 인도를 지원하기 시작하자 파키스탄은 봉쇄 대상이었던 중국과 밀착해 갔다.

베트남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SEATO의 균열은 더욱 커졌다. 급기야 1972년 파키스탄은 SEATO를 완전 탈퇴했고 이어 프랑스도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중단했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된 뒤 SEATO는 그저 허울뿐인 안보동맹일 뿐이었다.

SEATO는 1976년 2월 20일 끝난 합동군사훈련을 마지막으로 기능이 정지됐고 이듬해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훈련 참여 인원은 미국 영국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5개국 병력 188명. 필리핀 해안에 도로와 학교, 댐을 건설하는 대민활동이 합동군사훈련의 전부였다.

훈련 폐회식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에겐 ‘석별의 정’으로 널리 알려진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이 SEATO의 마지막을 알렸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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