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

  • 입력 2006년 2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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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 조근태 사장. 그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를 통해 한국학 출판에 힘을 쏟아온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현암사 조근태 사장. 그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를 통해 한국학 출판에 힘을 쏟아온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게 그렇게 많은가요?”

최근 현암사를 찾았던 기자는 이런 무식한 질문부터 했다. 현암사는 1997년부터 출판해 온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를 지난해 51권으로 1차 완간했다. 23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특별전’을 한 달간 연다.

책 한 권의 내용으로, 그것도 책이 언급하는 유물을 보여 주는 대신 책을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방식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에게 ‘정말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열의가 대단하지 않은가?

현암사는 특별한 뜻을 갖고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 지난해 창업 60주년을 맞았지만 ‘삼국유사’를 쓴 일연 탄생 800주년인 올해로 기념행사를 미뤘고, 이번에 전시회 개막식과 함께 기념식이 열린다. 조근태 사장은 “지나온 세월을 정리하고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보는 특별한 기념행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현암사가 펴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의 모델이 된 책이다. 민중생활사의 보고인 삼국유사를 읽고 형난옥 전무는 “우리 산천 전체, 생활문화 자체가 예술”이라고 탄복했다. 이 감탄은 “일상생활에서 예술을 찾아낼 수 있다면 삶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로 발전됐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꽃, 나무, 단청, 소리, 음식… 시리즈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물가 바위틈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돌단풍 꽃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생활의 격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이 시리즈는 보여 주었다.

23일의 전시회도 상상을 통해 역사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다. 삼국유사 유적지의 동영상과 책 내용을 이미지화한 ‘오픈 북’을 상영한다. 또 삼국유사의 글과 그림을 섞은 그래픽아트를 선보이고 삼국유사를 소재로 만든 연극도 매일 공연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필자들은 개막식 때 내놓기 위해, 전통 음식을 품격 있게 현대화한 간식거리를 ‘창작’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형 전무는 “책이 낡은 유물이 아니라 실천과 응용의 도구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현암사가 60년간 붙들고 온 화두였다. 1959년 왜색이 짙은 ‘육법전서’ 대신 처음으로 ‘법전’이라는 이름의 책을 냈고 1969년에는 당대의 학자 100여 명을 동원해 ‘한국의 명저’를 펴내 외면받아 온 한국학 연구에 시동을 걸었다. 1990년엔 사훈을 ‘신의와 성실’에서 ‘행복지수를 높이자’로 바꿨다. 행복지수라는 말이 흔해지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2000년에 사옥도 네모반듯한 건물 대신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열린 구조로 지었고 2002년에 조 사장은 “현암사는 사유물이 아닌 공공재”라는 생각에 회사를 법인으로 바꾸고 당시 주간이었던 형 씨를 대표이사 전무로 발탁했다. 조 사장은 한발 더 나아가 23일 창업 기념식에서 형 전무에게 사장직을 넘길 예정이다. 과묵한 편인 그는 “행복지수를 높이자는 사훈을 나부터 실천하려고 사장직을 넘기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현암(玄巖)은 ‘이끼가 거멓게 낀 바위’라는 뜻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지만, 웬걸 이끼는 항해 중인 ‘선박의 옆구리’에도, ‘고래의 등허리’에도 낀다. 시인 김광규는 이끼를 ‘짓눌려도 살아가는 우리의 넋’이라고 노래했다. 상업성에 짓눌리지 않는 넋으로 끝없이 변화를 모색하면서 한자리에서 60년 세월을 버텨 온 출판사가 있다는 것도 우리 문화의 복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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