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떠난 NSC사무처, 위상 ‘원위치’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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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3년 동안 대통령비서실은 그 어느 곳보다 잦은 조직 개편이 있었다. 청와대는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전에 철저한 업무 진단 없는 편의적 개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합치고, 나누고, 늘리고’=노무현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은 2003년 2월 출범 이후 10여 차례의 변신을 거듭했다. 비서관직을 신설하거나 통폐합하지 않은 채 이름만 바꾼 경우까지 합치면 횟수는 더 늘어난다.

차관급인 인사보좌관은 1년도 안 돼 장관급인 인사수석비서관으로 격상됐다. 부처별 전담수석제를 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를 관할하는 경제정책,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부활했다.

정무수석실도 ‘당-청(黨-靑) 분리’를 내건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취임 초 정무파트는 정무수석비서관과 정무1, 2비서관실로 출발했지만 2003년 12월 정무1, 2비서관실이 정무비서관실로 통합됐다.

2004년 4월 총선이 끝난 직후인 5월엔 정무수석비서관실이 폐지됐다. 대통령비서실 안에서 ‘정무’란 이름은 없어졌다.

지난해 두 차례 재·보선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정무수석 자리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당-청 분리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3년 만에 가라앉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외교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NSC 사무처의 위세는 막강했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외교 안보 현안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세에 걸맞게 NSC 사무처 인원은 정부 초반 12명 정도에서 출발했으나 60여 명 규모로 확대됐다. 인적구성과 함께 이종석(李鍾奭) 당시 NSC 사무차장의 월권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직제개편으로 NSC 사무처 기능의 대부분은 신설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안보실)로 넘어갔다.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준비하는 영역으로 원상 복구됐다. 3년 만에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의 역할로 돌아간 셈이다.

이 전 차장이 NSC를 떠나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되자 청와대 내에서도 “NSC 사무처가 결국 이 장관을 위한 자리였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설계를 잘 했어야…”=너무 잦은 조직개편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공부한다고 책상 정리에만 몰두하다 정작 공부는 못하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홍규(李弘圭)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는 17일 “대통령비서실에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코디네이션(조정)’이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처음부터 시간을 두고 잘 설계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선 권력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부처별 전담수석제 폐지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경제정책수석,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부활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가 쓴 책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설계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은 취임 초 ‘조직은 탄생과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라고 말했다”며 “국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최대한 보좌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곳이 비서실 조직”이라고 반박했다.

이름만 요란했던 비서관

노무현 정부 출범 3년 동안 대통령비서실에선 이색적인 비서관직이 뜨고 졌다.

청와대의 업무 진단을 전담했던 정책프로세스(PPR)개선비서관실은 1년 정도 지나 업무혁신비서관실로 통폐합되면서 사라졌다.

7개월 단명(短命)에 그친 연설팀 내 리더십비서관직은 뒷말이 많았다. 노 대통령이 탄핵 기간에 감명 깊게 읽었던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의 저자인 이주흠(李柱欽) 외교통상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심의관이 리더십비서관으로 전격 발탁되자 ‘독서 인사’란 평가가 나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메시지 관리를 위해 기존의 연설비서관직 이외에 연설기획비서관직을 신설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선 이 명칭을 놓고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말글비서관’으로 하거나 ‘담론비서관’으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대통령비서실은 지난달 노동비서관직을 노동 현안 이외에 일자리 문제를 다룬다는 의미로 노동고용정책비서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노동’과 ‘고용’이란 상대적인 뜻을 지닌 단어가 한 직함에 들어가게 된 것. 장기적으로 민정수석비서관실도 대통령의 법률 보좌 기능에 맞춰 명칭 변경을 고려 중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치 개혁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현 정부는 취임 초 비서실 내 정치개혁비서관직을 신설하는 문제를 검토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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