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늙어가는 TV’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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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TV를 잘 보지 않는다는 건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TV 시청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중년 세대는 여전히 TV 시청을 즐긴다. 시간 많은 노인층은 더 큰 고객이다. 방송프로그램도 나이 든 세대의 취향에 점차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흐름은 TV를 둘러싼 지각변동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최근 발간된 보고서 ‘우리가 아는 TV의 종말’은 앞으로는 ‘TV의 녹화시청’이 보편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벌써 하드디스크를 내장한 TV가 인기를 끌고 있다. TV를 보다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때 스위치 하나만 눌러 놓으면 다시 자리에 돌아왔을 때 전에 보던 장면부터 볼 수 있다. 하드디스크가 녹화를 해놓기 때문이다. 광고를 빼고 녹화해 주는 기능도 있다. ‘광고 없는 TV’의 등장이다.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전에 방송된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시청자도 늘고 있다.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가 있으면 어젯밤 프로그램을 보며 지하철로 출근할 수 있다. 이런 녹화시청의 새 패턴은 시청자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걸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방송사가 내보내는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 있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시청자가 자신의 일정에 맞출 수 있다. 혁명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시청률 조사는 실시간 시청가구를 대상으로 해 녹화시청이 통계수치에 잡히지 않는다. 디지털 기기에 능숙한 젊은 세대의 시청률은 실제보다 낮게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TV를 떠나고 있다’며 지상파방송이 내세우는 ‘TV 위기론’에는 엄살이 포함돼 있다. 지상파TV의 독점적 지위에는 아직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좋은 프로그램이 녹화시청과 인터넷의 위세 속에서도 인정받는다는 사실이다. 지상파TV가 먼저 방만한 경영과 ‘코드 편향’에서 벗어나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변화로부터 살아남는 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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