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공정위가 사는 길, 죽는 길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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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임기가 다음 달 9일 끝난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임명됐다. 유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3년이란 짧지 않은 임기를 마친 만큼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차기 위원장은 이달 하순이나 다음 달 초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관가(官街)는 물론 재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우리 공정위는 기업정책을 맡는 정부기관으론 선진국에서 경쟁 상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막강하다. 재계에서는 ‘상전 중의 상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강 위원장은 비교적 합리적이란 평을 들어 왔다. 하지만 ‘강철규 공정위’ 3년 동안 기업을 옥죄는 규제는 기승을 부렸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의 족쇄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聖域)이 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이 강화되고 공정위의 계좌추적권도 부활했다.

며칠 전 강 위원장은 현재 11개인 출총제 대상 기업집단이 8, 9개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제도 적용을 받는 자산 6조 원 이상 기업집단이 증가하고 부채비율 100% 미만이면 ‘졸업’하던 조항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제계의 출총제 졸업 기준 완화 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기업을 키우고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해 봐야 정부의 간섭과 규제만 커지는 한국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2001년부터 본격화한 신문시장 개입은 일상사가 됐다. 각종 무가지(無價紙)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데도 공정위는 ‘혼탁한 신문판매시장 정상화’ 주장을 되풀이한다. 2004년에는 신문고시(告示) 담당 사무관이 각 신문의 논조와 수익성 분석, 신문사 지국 및 본사 조사 시기를 담은 문건을 여당 의원 보좌관에게 전달해 문제가 됐다. 하기야 정권 핵심부의 뜻에 따라 ‘비판 언론 때리기’에 나선 일부 공무원들이 5년이 흐른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그게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기업인들은 공정위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른 경제부처에서도 시각이 곱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은 시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한 공정거래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한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벌 체제와 다국적기업’에서 이렇게 썼다. “재벌그룹의 규모 확대와 다각화를 제한하면 우리 대기업들은 거대 공룡 같은 다국적기업과의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는 또 “현재 재벌 정책은 ‘화재가 두려워 불 사용을 금지하고 칼날에 베일까 봐 칼 사용을 금지하는 식’의 일률적 규제”라며 “과거의 부작용을 청산하기 위해 미래를 외면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김&장법률사무소의 신광식 상임고문은 출총제를 ‘단체기합식 재벌 규제’라고 표현했다. 세계화와 개방화로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안방을 헤집고 다니는데 한국 기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역(逆)차별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힘이 있을 때일수록 몸을 낮추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공정위가 ‘완장’의 위세(威勢)와 ‘개혁’이란 이름의 착각에 도취해 계속 경제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면 갈수록 조직 해체나 권한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각종 규제 혁파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권익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리는 것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고 공정위도 사는 길이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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