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신사참배 반대’선언 이끈 와카미야 아사히 논설주간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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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지한파 논객으로 논설위원 재직 당시인 1995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직접 쓰기도 했다. 한중일 3국이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그의 꿈이다. 홍진환 기자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지한파 논객으로 논설위원 재직 당시인 1995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직접 쓰기도 했다. 한중일 3국이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를 형성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그의 꿈이다. 홍진환 기자
‘와타나베 쓰네오 씨, 아사히와 공투(共鬪) 선언.’ 올해 초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 2월호는 일본 최대의 발행 부수(1000만 부)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80) 회장 겸 주필과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58) 논설주간의 대담을 주요 기사로 실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 성향의 언론인 요미우리신문의 사령탑이자 일본 정계의 막후 실력자인 와타나베 주필은 이 대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문제에 관해 아사히신문과 공동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대담을 이끌어 낸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논설주간은 한국에서 유학한 지한(知韓) 논객으로 1995년에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직접 쓴 인물이다. 지난해 봄에는 기명 칼럼을 통해 ‘독도를 한국에 양보해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몽상(夢想)을 밝혀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일본기자클럽 방한단의 단장으로 한국을 찾은 와카미야 논설주간을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론자 대담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요미우리신문의 보수 논조를 이끌어 온 와타나베 주필이 진보 성향의 경쟁지 아사히신문과의 대담을 통해 아사히신문의 지론에 찬동했다는 점에서 반향이 컸지요. 어떻게 그를 대담에 이끌어 냈습니까.

“와타나베 주필은 나이로는 아버지뻘 됩니다. 일 관계로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나는데, 1년여 전부터 사석에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더군요. 결국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6월 사설로 대체추도시설 건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지요.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 이 문제를 함께 다룬다면 호소력이 클 거라고 생각해 지난해 11월에 제안했고 흔쾌히 ‘오케이’ 답이 와 12월 초에 만났습니다.”

론자는 발매되자마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이즈미 총리가 가장 먼저 발끈했다. 그는 마침 잡지 발매일인 1월 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이 나서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쾌함을 표했다.

대담 이후 와타나베 주필에게는 각종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폭주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와타나베 주필을 인터뷰한 데 이어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의 역사 인식 부족을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대담에서 보여 준 와타나베 주필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 문제, 아시아 외교에 대한 인식은 말 그대로 ‘어느 쪽이 아사히신문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더군요. 그가 ‘깜짝 변신’한 이유는….

“무엇보다 스스로도 관여한 언론 상황의 우경화가 지나쳐 위험 수위에 들어갔다고 본 것 아닐까요. 올해 80세를 맞는 연세도 작용한 듯합니다. 자기 세대가 사라진 뒤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관념적인 논쟁을 되풀이하게 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보수를 자임해 온 요미우리신문이 극단적인 우파와 선을 긋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 힘을 합치면 보수로 치우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까요? 최근에는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가세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일단 반향은 좋습니다. 특히 일본 정계에는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포스트 고이즈미 주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겠지요. 여론의 동향이란 여론조사 수치로도 측정되지만 언론계의 공기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그만둔다면 중국이나 한국과의 관계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걸까요.

“무엇보다 문제 해결의 기본 조건인 정상회담이 가능해지지 않습니까. 교착 상태에 있는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를 차근차근 회복해 나가야죠. 사실 한일관계는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만 중국과는 얽히고설킨 현안이 한둘이 아니에요. 그래도 차기 총리는 편한 처지입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만 하지 않는다면 중-일, 한일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참배론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베 장관은 관방장관이 된 이후로는 아직 태도를 확실히 하지 않고 있지요. 하지만 총리 후보가 되면 밝혀야 할 겁니다. 어떤 판단을 할지 주목됩니다.”

―지난해 아사히신문은 기사 날조 및 취재 메모 유출 사건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편집개혁위원회를 만들고 조직 혁신에 나섰다는 소식인데, 잘돼 갑니까?

“위기를 기회로 살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편집국장을 지면 개선과 행정 담당의 2명으로 나누고 부서 간 벽을 허물며 편집국 직속으로 탐사보도 프로젝트 팀을 여러 개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개혁 실험은 올해 4월부터 시작됩니다.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비판은 아사히신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어젠다(의제)입니다. 그런 어젠다를 경쟁지인 요미우리신문에 빼앗겼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사내에서도 ‘와타나베 주필을 너무 키워 주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크게 보아 일본을 위해 좋은 일 아닙니까. 보수세력의 ‘보스’인 그분이 말해야 뉴스가 되는걸요. 그나저나 와타나베 주필은 요즘 ‘아사히 효과’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만, 저도 덩달아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효과’라고나 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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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기자 sya@donga.com

■ 아사히와 요미우리는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은 각기 다른 논조로 일본 내 발행 부수 1, 2위를 달리는 맞수 언론. 각 사에서 논조를 이끄는 정점에 있는 인물이 와타나베 쓰네오 주필과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이다.

각기 하루 1000만 부, 800만 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두 신문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나 평화헌법, 미일 동맹 등 주요 현안에서 엇갈리는 논조로 맞서 왔다.

가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논란이 됐을 때 아사히는 ‘독불장군에게 국익은 없다’고 비판했지만 요미우리는 ‘전몰자 추도는 일본의 국내 문제’라는 사설을 썼다.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아사히는 ‘미국 지지밖에 없는 것인가’라고 회의했고, 요미우리는 ‘총리의 미국 지지 결단은 정확하다’며 정부에 힘을 실어 줬다.

개헌론에 대해서 요미우리는 적극 찬성, 아사히는 신중론을 취하고 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에 대해서도 아사히는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가 먼저이고 자리는 그 다음’이란 관점이다. 반면 요미우리는 ‘자학사관’을 비판하고 일본군 위안부는 아사히신문 등 좌익이 날조한 것이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아사히가 일본이 지향해야 할 이상형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신문이라면 요미우리는 일본인들의 욕구에 솔직한 신문이라고 말한다. 요미우리신문 논설위원회는 이를 “아사히는 일본의 다테마에(명분)를, 요미우리는 일본의 혼네(진심)를 대변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양사의 논조 싸움은 ‘공동투쟁 선언’ 이후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론자 대담에서도 와타나베 주필은 개헌, 자위대의 ‘군(軍)’으로의 변경, 국기국가법 등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해 와카미야 논설주간과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와타나베 주필은 대담 말미에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이 똑같은 사설을 쓴다면 두 신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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