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비자금 執猶로 법원 신뢰 훼손” 李대법원장, 공개비판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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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판결에 대해 이용훈(李容勳·사진) 대법원장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사실이 확인됐다.

대법원장이 구체적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이에 대해 일부 판사들은 “‘유전불벌(有錢不罰)’ 논란을 일으킨 판결에 대해 대법원장이 할 말을 했다”고 말했고, 다른 일부 판사들은 “대법원장이 구체적 사건의 판결에 개입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며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6일 법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은 1일 발표된 법관 인사에서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으로 승진한 지방법원 부장판사 19명을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법원장 공관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판사는 이 대법원장이 “내가 법관들의 판결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는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지만 이 판결은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판결이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법원장은 “남의 집에 들어가 1억 원어치의 물건을 절도한 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 판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래 놓고 200억, 300억 원씩 횡령한 피고인들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 국민이 어떻게 수긍하겠느냐”고 말했다고 참석자가 전했다.

이날 만찬에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재판장이었던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강형주(姜炯周·광주지법 수석부장) 부장판사는 유일하게 불참했다. 강 부장은 1일 인사에서 고법 부장으로 승진해 만찬 참석 대상이었다. 강 부장은 이 대법원장이 자신의 판결에 대해 강한 유감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 듣고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법원장은 또 “이 판결 때문에 전관예우 논란까지 다시 일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고인 측 변호사 가운데 대법관 출신의 Y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의 P, H 변호사 등은 재판장인 강 부장과 고교 동문이고, K 변호사 등 2명은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의 발언은 일선 판사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회사 돈 286억 원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오(朴容旿)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성(朴容晟) 전 회장, 박용만(朴容晩) 전 부회장 등 두산그룹 오너 3형제는 8일 선고공판에서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함께 기소된 두산그룹 상장 계열사 및 비상장 계열사 임원 11명도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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