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與圈내 혼선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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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복수의 여권 핵심 인사에게서 일제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17일 정동영(鄭東泳) 당시 통일부 장관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면담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도 16일 “연내 개최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김정일 “빨리 합시다”=본보가 입수한 정 전 장관과 일본 기자들의 15일 간담회 발언록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은 “2006년에는 정상회담이 아마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올해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정상회담을 하자는 데 합의했다. 김 위원장과의 합의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이 ‘자 빨리 합시다. 좋습니다. 합시다’라고 말했다”고 전한 뒤 “어디에서 열리느냐 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한 입장이며 이제는 결단만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최근 사석에서 “정 전 장관이 김 위원장을 면담했던 자리에서 2차 정상회담 문제가 정식 의제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 장관도 YT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적당한 시기에 아마 회담에 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보면 연내에도 가능성이 꼭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이 ‘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일제히 보도하자 청와대와 정 전 장관 측은 “정 전 장관이 김 위원장에게 2차 정상회담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고 김 위원장도 ‘올해 이뤄지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남북 간에 정상회담 추진을 놓고 고위급 차원에서 시기를 조율한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DJ 방북은 여권과의 화해?=연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4월 방북도 결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마스터플랜의 일환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전 장관이 지난해 6월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한 뒤 정부 내에서 지난해 말까지 어느 정도 ‘물건’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등 여권 핵심이 지난해 말을 전후해 DJ의 방북을 권유한 것도 정지(整地)작업이 끝났기 때문이란 것.

그러나 정부 유관 단체의 한 관계자는 “남북 간에는 공식 비공식 채널이 많다. 굳이 DJ를 중간에 내세울 필요는 없다”며 “DJ 방북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방북을 돕는 모습을 보여 DJ 정부 시절 도청 테이프 사건으로 반목이 생긴 DJ와 현 여권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야 호남지역의 냉담한 정서를 돌려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내 개최 유력=남북정상회담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노 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게 된다. 임기 말에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북한도 원치 않을 공산이 크다.

또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이 “남북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며 대대적으로 공세를 펼 게 확실하고 국민들도 의구심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올해 8·15 개최설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광복절에 맞춰 정상회담을 연 뒤 남북 화해 국면을 내년 대선 때까지 이어가는 게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국면에서 굵직한 합의를 순차적으로 터뜨려 간다는 것.

회담 개최지는 당초 ‘서울 답방’ 약속과 달리 서울 외의 지역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와 경의선 철도가 연결돼 있는 도라산역 등이 개최지로 거론된다.

일각에선 외교 관례에는 맞지 않지만 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 등 제3국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정상회담의 극적 효과 등을 감안할 때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설이다.

학계와 야권 등에서는 정상회담이 열리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합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 장관은 16일 재외공관장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참여정부는 현 단계에서 남북 통합을 논의할 의사도 계획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다면 ‘반대급부’로 북한판 대규모 ‘마셜플랜’을 제공할 것이란 관측은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청와대 내 별도 팀 가동”=한나라당이 DJ의 방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속내에는 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북한도 남측의 경제지원을 받으려면 다음 정권도 진보정권이 들어서야 유리하기 때문에 정상회담에 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엄호성(嚴虎聲) 전략기획본부장은 “은밀한 이야기는 이미 완벽하게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미 청와대 내에 별도 팀이 가동되고 있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수구’로 몰리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할 수도 없어 고심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뒷돈이 오가는 등의 거래가 예상되므로 시기나 조건, 의제 등을 국민에게 자세히 알리고 동의를 받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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