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위폐인쇄동판 파기증거 내놔라”…韓 “금시초문”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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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와 주미 한국대사가 북한 위조지폐 문제와 관련해 동시에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위폐를 인쇄하는 동판과 장비를 파기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14일 발언은 이제까지 한미 양국 정부 당국자를 통틀어 위폐 해법으로 제시된 방안 중 가장 명확하면서도 수위가 높다. 제조하는 데 쓰이는 동판과 기계 장치, 잉크, 종이 등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북한 당국 차원에서 위폐를 제조하고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백기 투항을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북한이 응할 수 있겠느냐”고 난감해했다.

이태식(李泰植) 주미대사가 15일 “북한 돈을 발행하는 곳에서 위폐를 만든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라고 말한 것도 이에 못지않다. 미국의 정보를 전한 것이긴 하지만 발언이 워낙 명료하고 단호해 뭔가 ‘의도’를 갖고 한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미국의 판단’이라는 모자를 씌워 북한에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북핵 6자회담의 최대 걸림돌인 위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근(李根)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의 미국 파견이 검토되는 단계에서 나온 두 대사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회담을 둘러싼 기류가 급랭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위폐 문제를 끄집어내 강공책을 펴는 것이 오히려 회담 재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버시바우 대사는 “미 행정부와 정계는 북한과 대화를 통한 해결에 회의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16일 “미국은 위폐 동판과 관련한 방침을 우리 정부에 전달한 적이 없다”며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대목을 한국 정부에도 알리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공개한 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동판과 관련된 미국의 방침을 전달받고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이를 밝히지 않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대사는 “미국이 2004, 2005년 북한 위폐와 관련된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은 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1998년까지는 북한 위폐에 관한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 이후의 위폐 제조나 유통에 대해서는 확인된 것이 없다”고 보고한 바 있다. 주미 대사 발언 따로, 국정원 당국자 발언 따로가 그 방증이 아니냐는 것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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