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대로 둘 것인가]1부⑤공무원연금vs국민연금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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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가입자만 봉인가?” 제약회사 임원인 50대 초반의 이모 씨는 공무원연금 얘기만 나오면 화가 치민다. 이 씨는 대뜸 “재정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는 줄인다는데 공무원연금도 손질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견 기업에 다니는 정모(37) 씨는 매달 12만6000원씩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정 씨가 60세까지 보험료를 낼 경우 그 후 매달 98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만약 정 씨가 공무원연금 가입자라면 어떨까. 120만∼160만 원은 받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사이에 공무원연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에 비해 공무원연금은 너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형평성 시비다. 이에 따라 대다수 전문가는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그대로 두고 국민연금만 먼저 개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 “공무원도 고통 분담해야”

50대 중반의 국민연금 가입자 공모 씨는 본보 특별취재팀에 장문의 e메일을 보내 왔다. 공 씨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은 기금이 이미 고갈돼 모두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내 연금보험료 내기도 힘든데 공무원연금까지 책임져야 하나?”

2000년 개정된 공무원연금법은 향후 적자가 발생하면 전액을 국가에서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분노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보험료 인상과 급여 축소 등 자구책을 요구하면서 정작 공무원들은 고통 분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일찌감치 기금이 고갈된 군인연금 역시 정부에서 적자를 메워 주고 있고, 사학연금도 기금 고갈이 되면 적자 보전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이른바 ‘새경론(論)’을 제기한다. “걸핏하면 공무원을 국민의 ‘머슴’이라고 하는데, 새경을 제대로 줘야 할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 공무원연금 혜택, 도대체 어떻기에

공무원연금의 급여 수준이 국민연금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도 논란의 도마에 오른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소득 대비 노후에 받는 소득)은 60%. 반면 공무원연금은 최대 76%에 이른다.

관동대 국제경영학부 김상호 교수 등의 조사 결과 총보험료 대비 연금 총급여의 수익률은 국민연금이 2.22배였지만 공무원연금은 3.79∼4.42배(1995년 가입자 기준)로 나타났다. ‘더 내고 덜 받는’ 정부개혁안이 통과되면 국민연금 수익률은 1.38배로 떨어진다.

지급 기준도 판이하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 전체 표준 소득월액의 30%를 지급한다. 공무원연금은 봉급이 최고조에 달하는 퇴직 전 3년 평균 보수의 50%를 지급한다.

또 국민연금은 2033년부터는 65세가 돼야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공무원연금은 지급개시 연령이 20년 근속기준에서 단계적으로 올라가 2020년에 가서야 60세로 된다. 이 역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행정자치부 공무원연금 담당자는 “공무원은 민간기업처럼 퇴직금도 없는 데다 보험료율이 국민연금의 4.5%보다 높은 8.5%이기 때문에 급여액만 가지고 많다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공무원의 월평균 보수도 2004년 기준으로 197만6000원으로, 100인 이상 사업장과 비교했을 때 96%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 공무원연금 정당하다는 주장도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과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연구센터장은 “공무원이 낮은 보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가 공무원연금으로 노후를 책임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들의 노후 소득보장 외에 산업재해나 사망 등에 대한 부조까지를 포괄하는 사회보장제도라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논쟁이 활발하다. 과거에 공무원의 급여가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2000년 공무원 보수현실화 조치 이후 이런 주장은 시대착오라는 것.

더구나 대부분 민간 직장인들이 고용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만 국가에서 노후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 특수직연금은 또 다른 재정적자 뇌관

공무원연금은 1993년 처음 적자가 발생한 이후 1996년과 2002년을 빼고 매년 큰 폭의 적자가 발생했으며 적자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추정에 따르면 재정적자는 2005년 6096억 원에서 2010년 2조7932억 원, 2020년 13조8126억 원으로 늘어나며 2030년에는 32조4810억 원으로 불어난다. 지금대로라면 2030년에는 정부 예산의 5% 정도를 퇴직공무원의 연금 지급에 써야 하며 공무원연금 지급액의 75%를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특수직연금 개혁은 당사자의 반발이 워낙 거세 공개적인 토론 자리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학 교수는 “일전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주장했다가 ‘밤길 조심하라’는 등 협박 전화에 밤낮으로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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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공무원-국민연금 동시에 고쳐야”▼

특수직연금의 모델은 공무원연금이다. 군인연금과 사학연금은 모두 공무원연금의 틀을 거의 그대로 따왔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성공하면 다른 모든 특수직연금의 개혁이 자동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만약 국민연금만 손을 댄다면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결국 연금 개혁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개혁의 순서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본보가 연금 전문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과 특수직연금을 동시에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이 66.7%(16명)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국민연금 우선 개혁’으로 29.1%(7명)였으며 ‘특수직연금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은 4.1%(1명)였다.

대다수 전문가는 연금 개혁을 한다 해도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존 연금 수급자의 반발이 사회적 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유예 기간을 충분히 두고 점진적으로 급여 수준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동대 국제경영학부 김상호 교수는 2030년에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통합을 주장한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2011년부터 신규 공무원연금 가입자에 대해 국민연금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존 가입자들의 경우 20년의 유예 기간을 둬 사실상 국민연금에 통합되는 방식이다. 연금에 함께 녹아 있는 퇴직수당은 별도로 퇴직연금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반발이 워낙 크기 때문에 먼저 국민연금부터 개혁하고 나서 공무원연금을 손보자는 의견도 있다.

정경배 한국복지경제연구원장은 “가장 긴급하고 규모가 큰 것부터 개혁하는 게 원칙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연금 개혁은 결국 공무원들이 주축이 돼야 하는데 자신의 이해가 걸려 있는 것부터 개혁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지고 나면 공무원연금도 더는 개혁을 미룰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사회부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경제부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교육생활부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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