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공감]윤후명씨 등단 40년 기념전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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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후명 씨(가운데)의 등단 40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문학그림전이 열렸다. 윤 씨가 이 행사를 기획한 소설가 제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지영  기자
작가 윤후명 씨(가운데)의 등단 40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문학그림전이 열렸다. 윤 씨가 이 행사를 기획한 소설가 제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김지영 기자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 들어섰다. 52점의 그림과 나란히 놓인 사랑의 언어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그녀는 내게 한 마리 새였다. 새처럼 날아와서 새처럼 날아가야 했다.’(‘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내가 그녀를 찾아 헤맨 것은 그녀를 내 박제로 하려던 데 지나지 않았다. 사랑 가운데는 한순간에 스쳐 지나감으로써 더 영원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새의 초상’)

모두 소설가 윤후명(60) 씨의 작품에서 고른 구절이다. “제자들과 함께 뽑은 겁니다.” 전시회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던 윤 씨가 말했다.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윤 씨에게 소설을 배운 제자들의 모임인 ‘비단길-서울문화포럼’이 기획했다. 스승의 회갑과 등단 40년을 기념해 잔칫상을 차려 드리자고 뜻을 모으고, 윤 씨 작품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문구들을 골라 김원숙(52) 임만혁(38) 화가에게 그림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오후 5시에 시작된 개막식에는 소설가 심상대 박덕규 씨, 시인 곽효환 씨 등 문인과 제자 70여 명이 모였다. 축사를 한 문정희(59) 시인은 윤 씨와 10대부터 우정을 나눠 온 사이다.

“진명여고 다닐 때 ‘용산고에서 제일 글 잘 쓰는 윤상규(윤후명 씨의 본명)’의 ‘명성’을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편지를 나누면서 함께 문학의 꿈을 키웠다. …오랜 시간을 교유했는데 나를 한 번도 여자로 봐주지 않더라.”(웃음)

스승에게 혹독하게 훈련받으면서 마음고생을 했던 제자들이 뒤늦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소설가 최옥정(42) 씨는 “첫 소설을 보여 드렸더니 그 다음 날 ‘쓰레기차에 버렸다’는 말씀을 들었다”면서 “둔해서인지 그 말씀을 듣고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돌아보니 그렇게 둔해서 지금까지 소설을 쓰게 된 것 같다”면서 웃었다.

소설가 정승재(47) 씨는 “선생님은 술과 문학밖에 모르시는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했다. 윤 씨는 문단에서 유난히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소설가 신장현(49) 씨도 “선생님은 문학성을 술로 맑게 씻고 지키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제자들은 스승의 작품을 낭송하고 문집 ‘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를 증정했다. 윤 씨의 소설 ‘둔황의 사랑’ 일부에 노래를 얹은 가야금 병창 공연도 열렸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윤 씨는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돼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명궁’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등이 있으며, 소설집으로 ‘부활하는 새’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장편소설 ‘협궤열차’ ‘여우 사냥’ 등이 있다. 윤 씨는 그동안 연세대와 추계예술대에서 소설창작론 등을 강의했고, 한국소설학당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40년간 한결같은 감수성으로 사랑과 고독을 아름다운 문장에 녹여 이야기해 온 작가의 잔칫상 앞에 모인 동료, 후배, 제자들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덕담은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어졌다.

‘찢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무너진 마음에 등불 하나/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있다/어느 마음속에도/하늘 있고/땅 있고/찰나와 영겁 닿는 빛 있음을/등불 걸어 밝히어라’(‘마음 하나 등불 하나’)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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