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93>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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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관영과 조참 모두가 불같은 전투력으로 이름을 얻은 장수들이었다. 거기다가 장량의 당부까지 듣고 싸움에 나선 터라 그 기세들이 여간 매섭지 않았다. 패왕이 몸소 이끈 초나라 선봉과 맞닥뜨리고도 두려움을 몰랐다. 성난 외침으로 군사들을 휘몰아 맞부딪쳐 갔다.

곧 여러 해에 걸친 한나라와 초나라의 쟁패전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이 진성 북쪽 성벽 아래서 벌어졌다. 어느 쪽도 가볍게 물러설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이제는 기세로 밀고 밀리는 싸움이 아니라, 그야말로 피가 튀고 살과 뼈가 흩어지는 피투성이 난전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팽팽하게 맞서자 차츰 한군의 머릿수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패왕과 초군의 일격을 받고 흩어졌던 한나라 장수들이 다시 군사를 수습해 관영과 조참을 거들면서 군사가 적은 초나라 쪽이 몰리는 기색을 드러냈다.

패왕의 본능적인 전투감각도 곧 자기편의 비세를 알아차렸다.

‘한왕이 이끈 대군과 북쪽에 매복하고 있던 대군을 하나씩 따로 쳐부수려 했는데, 오히려 차례로 불러내 우리가 거꾸로 몰리게 되고 말았구나. 크게 잘못 되었다….’

패왕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재빨리 싸움터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대오를 수습해 되몰려든 한군들로 3만도 안 되는 초군은 차츰 외로운 섬처럼 에워싸여 갔다. 그걸 보자 패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미련 없이 소리쳤다.

“이제 이곳을 빠져 나간다. 그러나 돌아서는 것이 아니고 앞을 막은 적을 뚫고 나간다. 과인이 앞설 터이니, 죽기로 싸워 길을 열라. 결코 적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한군 속으로 성난 범처럼 뛰어들었다.

오직 살기 위한 길을 열려는 싸움이 되자 초나라 장졸들의 기세도 이전과 견줄 바가 아니었다. 군신(君臣) 장졸(將卒)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맹렬하게 치고 드니 힘을 다해 버티던 관영과 조참의 군사들도 흠칫했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밀리며 내준 길로 패왕 항우가 이끈 초나라 군사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애초부터 그런 때를 위해 한껏 몸을 가볍게 한 초군들이라 빠져나가는 기세가 마치 매섭고 빠른 회오리 같았다.

어렵게 북쪽으로 뚫고 나간 패왕은 곧 군사들을 남쪽으로 몰아 새벽에 먼저 떠나보낸 항장(項壯)의 뒤를 쫓게 했다. 하지만 관영에게는 날랜 기마 5천이 있었다. 그들이 악착같이 뒤쫓으며 몰아치니 아무리 패왕이 이끈 정병이라 해도 희생과 손실이 없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한군의 추격을 뿌리친 패왕이 군사를 수습해 보니 그 사이에 입은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초나라를 편들어 싸우던 누번(樓煩) 장수 두 명이 목숨을 잃고, 기장(騎將) 여덟 명이 관영의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갔다. 군사도 5천 넘게 줄어 있었다.

‘그래도 오늘 싸움으로 유방은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함부로 우리를 뒤쫓지 못하리라.’

패왕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길을 동쪽으로 잡았다.

해질 무렵 항장의 군사들을 따라잡은 패왕은 그들에게서 다시 분통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진현(陳縣) 현령으로 세워 진성에 남겨둔 초나라 장수 이기(利機)가 한왕에게 항복해 버린 일이었다. 농성전으로 며칠이라도 한군의 발목을 잡아줄 줄 알았는데, 싸움 한번 없이 성문을 열고 한군을 맞아들여 버리자 초군은 더욱 뒤가 허전해졌다. 밤길을 재촉해 한 발자국이라도 멀리 진성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왕이 군사를 쉬게 한 것은 성보(城父)에 이른 다음이었다. 관영이 급히 한왕에게로 돌아가느라 비워두다시피 한 그곳으로 밀고 들어, 높고 든든한 그 성을 차지한 다음에야 비로소 초군은 하룻밤 다리 뻗고 잘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기의 배신에 심기가 흔들린 탓일까, 다음 날 패왕은 갑자기 마음이 바뀐 듯 말했다.

“어찌되었든 먼저 팽성으로 가보자. 팽성을 되찾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서초를 다시 일으켜 보자. 그게 정히 아니 되면 그때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전날 진성을 나설 때 한 말과는 달리 군사들을 내쳐 동쪽으로 몰았다. 패왕의 몰락을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몰아가는 결정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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