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만호]‘아시아 인권체계’ 논의 시작하자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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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자행되고 있는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와 인신매매 실태를 알리고 개선책을 논의하기 위해 2월 6일부터 8일까지 ‘아시아 인권포럼’과 ‘청년인권활동가 워크숍’이 한국에서 개최됐다. 위띳 문따폰(태국·전 유엔 아동매매 포르노특별보고관·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스와미 아그니베시(인도·채무노동해방전선 대표), 마 세실리아 플로레스외반다(필리핀·비사얀 포럼 대표) 씨 등 아시아 아동전문가와 운동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 간부들이 참여해 교육 연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 시점에서 아동에 대한 논의가 우리에게 어떤 의의가 있고 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되는가.

첫째, 우리는 국제사회에 대해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져야 한다. 한국이 현재와 같은 경제 성장,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이루기까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시아 개발도상국 국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둘째, 인근 강대국이 인권 신장 없이 현재와 같은 추세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신장시키면 이는 한국 등 역내 중소 규모의 국가들에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 전체주의 패권국가들처럼 국가가 무력에 기초한 국익을 추구하면서 역내의 평화를 위협해도 자국 내에서는 견제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18세 미만의 아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인신매매와 유랑 걸식 아동(꽃제비) 문제 등은 북한과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한국 일본도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협의와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아시아의 심각한 인권 현안들에 대해 관련 국가들이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들은 문화적 특수성을 내세우며 서구 선진 사회와 다른 인권 기준을 주장하고 있으며 아시아에는 정부 간 조약도 없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서 아시아에서는 지역 차원의 인권 체계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에서는 국가주권주의가 강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전체주의 이념이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구조적으로 침해하고 있어서 지역 차원의 인권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유럽에서 지역 인권 체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고려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유럽의 지역 인권 체계도 여전히 다양성을 종합한 역사적 미봉(彌縫)이고, 현재까지도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인적 교류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데 비해 피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당사국의 구제 제도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도 현실적으로 활용하기 힘들어 지역의 안보협력 차원에서도 인권 체계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는 중국과 북한이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머지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역 인권 체계 혹은 인권포럼을 결성하는 것이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아시아에서도 지역 혹은 하위지역 차원의 정부 간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인권 보호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현재 한국만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는 없다.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허만호 아시아인권센터 소장·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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