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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종석]대선공약과 반대로 가는 정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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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종석]대선공약과 반대로 가는 정부정책

입력 2006-02-16 02:59수정 2009-10-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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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반쯤 들어 있는 컵을 보면서 낙관론자들은 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비관론자들은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지만 경제학자들은 컵이 불필요하게 크다고 생각한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 정부의 150개 핵심 공약에 대한 중간 점검 결과 73개가 추진 중, 75개가 부진 또는 실패로 나타났다. 보기에 따라 잘했다고 할 수도 있고 못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애당초 150개 공약 중 불필요하거나 지킬 수 없는 공약이 너무 많았다.

행정도시 건설이나 자주국방 같은 공약은 우리 사회가 져야 할 부담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추진 실적이 부진한 게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재벌 개혁도 득실이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빈부격차 해소나 재정 건전성 유지처럼 정부 정책이 공약과는 반대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경우도 있고, 7% 성장 공약이나 노인 일자리 50만 개 창출처럼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었던 공약도 있다.

정부 위원회와 산하 단체를 정비해 정부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공약과 학생 선발 등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은 현재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차라리 공약을 안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이라고 해서 당선 후 공약을 모두 다 지키는 게 반드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운동을 위해 급조한 공약을 대통령 공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실행에 옮겨야 한다면 오히려 재정 파탄이나 사회적 혼란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현 정부가 나중에라도 공약을 제대로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급조된 선거용 공약은 과감히 포기하고 국가 장래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국정 과제만 골라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과 공약을 ‘반대로 집행하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핵심 공약에는 근로자의 세 부담을 줄이겠다고 돼 있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근로소득세는 매년 10∼17%씩 증가해 왔다. 정부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 각종 위원회와 공무원이 계속 늘어나 ‘작은 정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모두 현 정부가 큰 그림으로 생각하고 있는 복지와 연관된 사안이다. 가장 큰 골격조차 그리지 못한 채 대통령선거를 치렀든지, 아니면 공약의 모순을 알면서도 국민을 속였든지 둘 중 하나다.

어쨌든 현 정부도 공약을 완수한 정부는 되지 못할 전망이다. 역대 정부가 모든 선거 공약을 지키진 못했다. 전설적인 선거 공약 중에는 대통령 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는 것도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결국 쌀 시장은 개방되었고, 대통령은 임기를 다 채웠다.

진심으로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 공약을 했다면 현실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고,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약속을 했다면 간사한 사람이다. 어떤 경우든 국정을 맡겨선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론적으로 선거란 이런 믿을 수 없거나 무능한 사람을 솎아 내는 과정이다.

지키지 못할 공약과 국익에 반하는 선거 공약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정치인들은 달콤하고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공약으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련한 정치인일수록 국민 여론이나 지지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든지 달콤한 약속과 정치 이벤트로 여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이 현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 나라의 정치인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평균 수준과 같다고 한다. 현란한 언어와 절묘한 말장난에 현혹되는 국민이 있는 한, 공짜로 나눠 주겠다는 공약에 현혹되는 국민이 있는 한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석 달 뒤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수많은 후보가 많은 공약을 쏟아 낼 것이다. 후보와 공약이 너무 많다 보니 경쟁적으로 더 튀고 과격하며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공약을 만들어 내려 할 것이다. 튀는 공약과 달콤한 공약일수록 지킬 수 없거나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공약을 접할 때는 너무 큰 컵이 아닌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한다. 컵을 다 채우지 못했을 때 행여 컵을 절반 이상 잘라 내고 물이 넘친다고 주장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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