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원재]日시장 장벽 제아무리 높다한들

  • 입력 2006년 2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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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0일 일본 제2의 휴대전화서비스 업체인 KDDI의 대리점 진열대에 팬택앤큐리텔의 3세대 단말기 ‘A1405PT’가 일제히 깔렸다. 세계 제일의 휴대전화 격전지라는 일본 시장에 마침내 한국 제품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날 현장에 나갔던 팬택 일본법인의 김영일 지사장은 20대 여성이 ‘PANTECH’이라는 영문 브랜드가 선명한 단말기를 고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2004년 초 지사를 만든 뒤 2년간 경쟁업체의 견제에 시달리며 KDDI의 문을 줄기차게 두드렸던 역정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일본 업계의 까다로운 제품 규격을 통과한 것도 흐뭇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뚫었다는 점이 더 기뻤다”고 말했다.

도쿄(東京)에서 근무하는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지구상에서 한국 물건을 팔기 가장 힘든 곳이 일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구 1억2000만 명의 선진국’ 정도로 여기고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문전 박대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한국의 기술은 자신들이 가르쳐 줬다는 묘한 우월감, 웬만하면 자국산을 쓰려는 소비자의 배타성, 신규 업체의 진입을 교묘히 봉쇄하는 업계와 행정 당국의 커넥션….

듣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일본 특유의 모호한 화법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한 무역업체 사장은 상대방이 ‘제품이 좋아 보인다. (거래를) 검토하겠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다가 완곡한 거부 의사였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듣고 허탈해했다.

2000년 113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일(對日) 무역적자는 2004년엔 244억 달러로 불어났다. 일각에선 일본에서 기계와 부품을 들여와 가공해 파는 한국의 무역구조를 고려할 때 적자 수치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로 빈사 상태에 빠진 1998년 대일 적자는 전년도의 절반에도 못 미친 46억 달러였다.

그러나 한국의 무역흑자 총액과 맞먹는 달러를 매년 일본에 고스란히 바쳐야 하는 악순환을 방치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해법은 한국 제품을 일본에 많이 파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대우인터내셔널 일본법인이 지난해 성사시킨 대일 수출액은 3억5400만 달러로 1년 전(2억4500만 달러)보다 1억 달러 이상 늘었다. 박성현 지사장은 “전임자가 거래 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덕”이라고 말했지만 주위에서는 그의 마당발 기질을 비결로 꼽는다. 일본에 팔 만한 물건이면 가리지 않고 취급하고, 물건을 사줄 만한 업체가 있으면 시골이라도 찾아간 적극성이 실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일 간의 역사적 특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교포 2세로 철강 무역업을 하는 영스틸의 최상영 사장은 현대자동차가 일본에 상륙한 2001년부터 오사카와 요코하마 등 3곳에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 수출하는 현대차는 연간 3000여 대에 불과해 철강 무역에서 번 돈으로 현대차 대리점 적자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대차 대리점을 한 곳 더 낼 생각이다. 두 나라가 경제 분야에서 가까운 이웃이 되려면 서로 비슷하게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가 돼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도요타가 렉서스 1만 대를 한국에 팔면 현대차도 쏘나타 1만 대를 일본에 수출해야 공평하다는 논리다.

요즘 잘나가고 있는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사장은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일본 소비자들의 혹독한 검증을 받으면서 제품 수준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 어디서든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수출 일꾼들이 일본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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