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초청장도 없이 방북 밀어붙이는 이유는

  • 입력 2006년 2월 1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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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방북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금년 안에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DJ가 방북하면 연방제와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한나라당 측의 의구심을 여권 인사가 확인해 준 꼴이다. 이래저래 DJ의 방북 의도를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DJ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취해 온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까지 나서 “국민에게 의심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된다. DJ의 방북 문제도 하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끊이지 않는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답방 요청=DJ는 2000년 6월 김 위원장과의 1차 정상회담 후 최근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촉구해 왔다. 공개 발언만 10차례가 넘는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관계자들도 ‘답방 기대’라는 표현으로 수차례 김 위원장의 답방을 요청했다.

DJ가 이처럼 답방을 애걸하다시피 한 것은 답방이 이뤄져야 6·15정상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이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의전’ 측면에서도 답방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 간의 외교는 상호 방문이 기본이다. DJ 정부 관계자들도 “DJ가 노구를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만큼 젊은 김 위원장이 답방하는 것은 기본 예의”라고 한 바 있다.

▽지나친 저자세 아닌가=DJ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합의한 당사자다. 상대방은 ‘기본 예의’도 지키지 않는데 또다시 북한을 가겠다고 나선 것은 지나친 저자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굳이 이 시점에 북한을 가려는 데는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DJ 측은 “북한에서 초청해 가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초청도 석연찮다. 지난해 8·15민족대축전 당시 서울을 방문했던 김기남(金基南) 북한 노동당비서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DJ를 문안하면서 “(김 위원장이)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구두 초청 의사만 전했다.

개인 간에도 손님을 초대하려면 시간 장소를 정해 초청장을 보내는 것이 예의다. DJ가 지난달 말 4월 하순 방북 계획을 밝힌 직후 DJ 측 참모진 사이에서는 “방북단 규모와 형식, 의전에 관한 내용을 정한 초청장이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북측은 DJ가 ‘4월 하순 열차로 방북’할 수 있게 초청해 달라고 공개 요청한 지 보름이 다 되도록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

DJ 측은 “방북하는 데 문제는 없다. 북측과 얘기가 잘되고 있다”고 장담한다. 한 관계자는 “열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번엔 수백 명이 함께 갈 것이다.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한마당 축제로 방북 행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측도 DJ의 방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철(李哲)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9일 “DJ 방북이 결정되면 아무런 차질 없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DJ와 정부 측이 방북을 기정사실화하며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공개할 수 없는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빈손으로 오고 갈까=야당은 1차 정상회담의 예로 볼 때 DJ가 방북 길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갈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보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북측으로서도 DJ가 방북하면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남측에 가서 풀어 놓을 선물을 줄 가능성이 있다. 그 뒤처리는 결국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위조지폐 문제, 북핵 관련 6자회담 문제 등 한반도를 둘러싼 현안이 있지만 이는 미국이라는 상대가 있는 일이고 또 민간인 신분인 DJ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결국 주목되는 부분은 정치적 의도다. DJ의 북한 방문이 실현돼 김 위원장과 ‘통 큰’ 협의를 하고 올 경우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거대한 충격파가 몰아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여론지지도 면에서 한나라당에 현저하게 뒤지고 있는 열린우리당에는 더없는 호재가 될 수 있다.

DJ가 스스로 4월 방북 추진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 해도 결과적으로 특정 정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취할 바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DJ는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측의 ‘연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연합제’는 DJ의 개인 방안이었을 뿐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으며 이 점에서 정상회담에서의 통일 방안 합의는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DJ가 이번 방북에서도 연방제를 논의할 경우 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이념 대결과 국론분열이 되풀이될 것으로 야권은 우려하고 있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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