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91>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1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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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런 다음 패왕은 종제인 항장(項壯)을 불러 명을 내렸다.

“네게 군사 3천을 줄 터이니 너는 싸움에 보탬이 되지 않는 노약자들과 군중의 전곡(錢穀)을 보존하여 먼저 동쪽으로 떠나도록 하라. 내일 새벽 남문으로 나가 성부(城父)로 가되 과인이 뒤따라 잡기 전에 성안으로 들지는 말라.”

항장이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이어 다른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은 내일 해가 뜨는 대로 과인과 함께 성을 나가 적을 친다. 모두 각자의 군막으로 돌아가 군사들로 하여금 내일 있을 한바탕 모진 싸움을 채비하게 하라. 먼저 군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이고, 오늘밤은 초경부터 잠자리에 들게 해 넉넉히 쉬도록 하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보기(步騎)를 가리지 않고 되도록 몸을 가볍게 하여 성을 나가게 하라. 벼락처럼 치고 들고 바람처럼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밤은 자신도 일찍 군막에 들어 태평스레 잠들었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 새벽에 항장이 군중의 재물과 곡식을 수레에 싣고 노약자를 보호해 가만히 남문을 빠져 나갔다. 그 노약자 속에는 남장(男裝)한 우(虞)미인도 섞여 있었다. 그 사이 남은 초나라 장졸들도 일찍부터 그날 있을 싸움을 채비했다. 패왕이 주력을 이끌고 북문을 나갈 작정이다 보니 그쪽이 수런거려 한군의 주의는 절로 북문 쪽으로만 쏠렸다.

이윽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진성의 북문이 열렸다. 성문을 나서기 전에 패왕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장졸들을 모아놓고 다짐하듯 일러주었다.

“적은 따로 한 갈래를 숨겨놓고 거짓으로 진 척 우리를 그리로 꾀어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당백(一當百)의 정예이고 적은 갈까마귀 떼나 다름없다. 복병이 일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먼저 성 밖의 적진을 쓸어버리고, 속은 척 뒤쫓다가 적의 복병이 나오거든 힘을 다해 들이쳐라. 그 복병마저 꺾어 놓아야 우리가 돌아가는 우리 길이 편해진다.”

초나라 장졸들이 함성을 질러 그런 패왕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성난 물결과 같은 기세로 패왕을 따라 북문을 나왔다. 번쩍이는 갑옷투구로 몸을 싼 패왕 항우가 오추마에 높이 올라 앞장을 서고, 종리매와 환초를 비롯한 여러 장수가 옆으로 늘어선 뒤로 3만 대군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어디에도 밀리고 쫓기는 군사 같은 티는 전혀 없었다.

저만치 한군의 원문(轅門)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패왕 항우가 범이 울부짖듯 큰 소리로 한왕 유방을 불러냈다.

“한왕은 어디 있느냐? 아직 목이 붙어 있거든 나와서 과인의 말을 들어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원문이 열리며 태복(太僕)의 복색을 갖춘 하후영이 모는 수레 한 채가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냈다. 누른 비단 덮개를 하고 휘장을 드리운 것으로 보아 한왕이 탄 황옥거(黃屋車)였다.

그 황옥거 곁으로는 한다하는 한나라의 맹장들이 말을 타고 펼쳐서 있었다. 큰 칼을 든 번쾌와 강한 활을 안장에 건 주발을 비롯해 왕릉 역상 주창 근흡 시무 등이 말위에 높이 올라 앉아 있는데, 관영과 조참을 빼고는 한나라의 장수 모두가 나선 듯했다.

“초왕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이제라도 항복하여 천명(天命)에 따르려는가?”

한왕이 황옥거의 휘장을 걷고 얼굴을 내밀며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그 소리에 벌써 패왕의 눈이 뒤집혔다. 한왕을 충동질해 보려다 제 속이 먼저 뒤집혀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은 두더지처럼 방벽과 참호 안에 숨어 비루한 목숨이나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또 무슨 요행을 바라고 여기까지 과인을 쫓아왔느냐? 기어이 그 늙은 머리를 과인에게 바치러 여기까지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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